![2020 도쿄 올림픽 당시 김동선[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50305090047007655e8e9410871751248331.jpg&nmt=19)
등자는 ‘등자 등(鐙)’과 ‘아들 자(子)’의 합성어이다. ‘등(鐙)’은 뜻을 나타내는 ‘쇠 금(金)“ 부수와 음(音)을 나타내는 ’오를 등(登)‘이 합해져 이루어진 글자이다. 말에 오를 때 쓰는 쇠로 된 발판이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등자는 쇠가 아닌 가죽으로 발판을 쓰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선 조선시대 때부터 등자라는 말을 사용했다. 인터넷 조선왕조실록에서 등자를 검색해보면 국역 27회, 원문 18회 등 총 45회가 나온다. 성종실록 50권 성종 5년(1474년) 12월 24일 을사 1번째기사는 “야인의 땅에서도 역시 철(鐵)이 생산되므로, 다 철촉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세종조(世宗朝)에 대개 야인에게 안장의 장식[鞍飾]과 등자(鐙子)를 하사하였었는데, 모두 황동(黃銅)으로 만든 것이었습니다”고 전했다.
등자는 영어로 ‘stirrup’라고 말한다. 영어용어사전에 따르면 ‘stirrup’ 어원은 등반용 로프라는 뜻인 고대 영어 ‘stirao’에서 유래했다. 중세 영어 ‘stirop’를 거쳐 현대 영어로 변용됐다.
고대 시대 초기의 발받침은 기수가 발을 띠 아래에 두거나 기원전 2세기 인도에서 나타난 단순한 발가락 고리를 사용하는 모양이었다. 발받침이 탑승 보조 도구로 사용되었고, 나무 안장이 발명된 후에 한 쌍의 등자가 등장했다. 등자는 4세기 중국의 진나라에서 발명되었고 , 5세기 중국 전역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7세기 또는 8세기에는 중앙 유라시아 유목민을 통해 유라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퍼졌 나갔다.
등자는 안장이 먼저 발명된 후에 등장했다. 등자와는 달리 안장은 정확히 언제 어디에서 발명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한국에서는 등자가 4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했을 것으로 보인다. 5세기의 고분인 고구려 태왕릉, 신라 황남대총 등에서 등자 실물이 출토된 바 있다. 신라 시대 토기 등에서도 등자 모양의 그림이 그려져 있어 적어도 삼국시대 중반부터는 널리 쓰인 듯하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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