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용어사전에 따르면 ‘Weightlifting’은 무게를 의미하는 ‘weight’와 들어올린다는 의미인 ‘lifting’의 합성어이다. 중량을 들어올린다는 뜻이다. 이 종목은 고대 그리스 시대나 그 이전부터 돌과 같은 무거운 것을 들어올리는 경기가 변형된 것이다. 중세에 접어들면서 독일에는 힘자랑으로 돌 던지기가 있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돌 던지기나 돌 들어올리기와 같은 경기는 힘겨루기 방법에 지나지 않았다.
근대적인 역도 경기가 그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1800년대부터이다. 그 이전인 영국 엘리자베스 왕조 시대에 덤벨을 사용하는 운동경기가 있었다고 하나 운동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독일의 구츠무츠나 얀에 의해서였다. 얀의 제자 아이젤 렌에 의하여 덤벨 운동의 지도서가 만들어졌다. 1896년 제1회 올림픽 대회에서는 역도가 체조의 한 부분으로 다루어졌는데 한손에 의한 저크와 두 손에 의한 저크가 있었다. 1920년 제7회 올림픽 대회부터 독립된 경기로 인정을 받았으며 이때에는 5개 체급으 로 나누어 체중별로 경기를 하게 되었다. 드디어 1928년 제 9회 암스테르담 올림픽부터 양 손에 의한 프레스(추상), 스내치(인상), 저크(용상)의 세 종목이 채택되었다. 그러나 추상 종목은 1973년부터 폐지되었다. 현재와 같은 역도가 우리나라에 첫선을 보인 것은 1928년 ‘역기(力技)’라는 칭호를 가지게 된 후이다. 1936년에는 조선 역기 연맹이 조직됐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37년 5월21일자 ‘역기(力技)를역도(力道)로개칭(改稱)’ 기사는 ‘조선력기연맹(朝鮮力技聯盟)에서는 종래(從來)의역기(力技)(일명(一名)은중량양(重量揚))란 명칭(名稱)을 개정(攺正)하야 압흐로는 역도(力道)라고 부르기로되엿다한다’라고 전했다. 이 기사에서 ‘중량양’은 ‘중량거(重量擧)’를 잘못 표기한 것으로 보이는데, 역기를 역도라고 표현한 것은 문곡 서상천(1902~?) 선생의 제안에 의해서라고 한다. 그는 단순 체육을 넘어 정신적 도덕적 차원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도(道)’라는 표현을 했던 것이다. 서상천 선생은 1902년 대구 달성군에서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에서 체육학교를 졸업한 뒤 휘문고보에서 교편을 잡았다. 암울한 식민지 시절, 그는 체육을 통한 민족 중흥을 꿈꾼 인물이었다. 역도라는 경기 명칭을 독자적으로 만든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서양 스포츠가 일본으로 도입될 때 경기 명칭은 한자어로 번역됐다. 야구, 축구, 농구, 배구, 육상, 수영, 체조, 탁구, 양궁, 사격, 권투 등은 일본에 의해 만들어진 경기 명칭으로 현재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본 코너 3회 ‘‘야구(野球)’는 낭만적인 문학적 표현이다‘, 11회 ’축구에서 일본식 영어가 널리 쓰인 이유는 무엇일까‘, 352회 ’왜 농구(籠球)라고 말할까‘, 454회 ’왜 ‘Volleyball’을 '배구(排球)라고 말할까‘, 661회 ’왜 ‘육상(陸上)’이라 말할까‘, 800회 ’왜 ‘수영(水泳)’이라고 말할까‘, 851회 ’왜 ‘체조(體操)’라고 말할까‘, 1001회 ’왜 ‘탁구(卓球)’라고 말할까‘, 1181회 ’왜 양궁이라 말할까‘, 1211회 ’왜 ‘사격’이라고 말할까‘, 1291회 ’왜 ‘복싱(Boxing)’을 ‘권투(拳鬪)’라고 말할까‘ 참조)
우리나라에서 일본과 달리 쓰는 경기 명칭의 한자어로는 역도는 매우 특이하다. 일본서는 경기 명칭 번역을 직역보다 의역을 시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역도는 영어 웨이트리프팅을 직역해 중량거라고 불렀는데 한국서는 일본과는 달리 역도라고 표현한 것이다. 중국서는 역도를 무거운 것을 든다는 의미로 ‘거중(擧重)’이라고 말한다. 일본과 같이 의역보다는 직역으로 비슷하게 이름을 붙였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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