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이 부진하자 아베가 "승짱, 당신은 거인의 4번타자다"라고 응원했던 일화도 있다.
그랬던 둘은 은퇴 후 지도자가 됐다. 이승엽은 두산 베어스 감독이 됐고, 아베는 친정인 요미우리에서 착실하게 코치 수업을 받은 뒤 감독이 됐다.
하지만 성적은 달랐다. 이승엽은 감독 데뷔 해에 5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으나 조기 탈락했다. 2024년엔 4위로 가을야구 무대에 섰으나 또 초반에 떨어지고 말았다.
반면, 아베는 감독 데뷔 해인 2024년 요미우리를 센트럴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범호는 KIA 타이거즈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 출신 감독이다. 그 역시 감독 첫 해인 2024년 KIA를 정규리그 1위,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려놓았다.
선수 시절에는 아베와 이범호를 압도했던 이승엽은 그러나 지도자 성적은 체면이 서지 않을 정도로 좋지 않다.
이승엽은 선수 시절 '국민타자'로 사랑받았다.
그러나 감독이 된 후 "이승엽 나가!"라는 연호를 듣는 수모를 당했다. 2024 포스트시즌 WC 결정전에서 패하자 성난 일부 팬들은 잠실 구장에 둘러서서 이 감독 퇴진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경기 후 1시간을 훌쩍 넘은 뒤까지도 선수단 전용 출입구 주변에 머물며 "이승엽 나가!"를 외쳤다. "삼성으로 돌아가라"고도 했다.
'국민타자' 이승엽 '감독'에 대한 눈높이가 높았던 탓이다.
이승엽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할 수 있겠지만, 그러는 팬들을 뭐라 할 수도 없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고의 성적을 올려야 하는 게 감독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미국 메이저리그는 올해의 감독상을 뽑을 때 어려운 상황에서 얼마나 좋은 성적을 올렸는지를 중시한다. 우승 팀 감독을 무조건 올해 최고의 감독으로 선정하는 KBO 리그와는 다르다.
LA 다저스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지만,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올해의 감독에 뽑히지 않았다. 오타니 쇼헤이를 비롯해 슈퍼스타들을 다수 보유한 팀을 우승으로 이끈 것이 무슨 대수냐는 것이었다. 대신 밀워키 브루어스의 팻 머피가 선정됐다. 그는 에이스 코빈 번스가 트레이드로 팀을 떠났고 브랜든 우드러프의 어깨 부상, 마무리 데빈 윌리엄스의 허리 피로골절로 전반기를 날린 데 이어 크리스티안 옐리치 마저 시즌 중 허리 수술을 받으며 이탈하는 온갖 악재들을 극복하고 팀을 가장 먼저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다.
물론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 로버츠 감독은 이들 슈퍼스타들을 잘 활용했다는 점은 높이 사야 한다.
올해 두산의 전력이 지난해보다 나아졌는지는 시즌이 시작돼야 알 수 있다. KIA를 비롯해 투수진이 강화된 삼성 라이온즈, 여전히 강한 라이벌 LG 트윈스의 벽을 넘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럴 때 이승엽은 '역전 홈런'을 쳐야 한다. 그래야 명장이 될 수 있는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이제는 그럴 때가 됐다. 또 "나가!"라는 소리를 들을 순 없지 않은가?
[강해영 마니아타임즈 기자/hae2023@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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