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토베는 1900년 미국에서 ‘Bushido: The Soul of Japan’을 발간했다. 그는 미국의 존스 홉킨스 대학원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서양인 여성과 결혼한 철저히 서구화한 일본인이자, 퀘이커 교도였다. 한 서양인 친구에게 "서양에서는 종교 교육에 의해 도덕 교육이 이루어지는데 일본은 어떤 방식으로 도덕 교육이 이루어지냐?"라는 질문을 받고 당황했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의 여러 고전 자료와 어릴 적 할아버지에게서 들었던 무사 이야기들을 조합해서 영어로 이 책을 발표했다. 이 책은 미국과 서유럽에서 히트를 치면서 베스트셀러가 돼 일본 무사도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체결하여 미국의 필리핀에 대한 지배권과 일본의 대한제국에 대한 지배권을 상호 승인한 장본인인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이 책을 읽고 극찬을 하면서 추신구라, 오륜서와 함께 본인의 애독서 목록에 올릴 정도로 유명해졌다.
니토베의 ‘무사도’가 서구에서 히트했다는 소식을 접한 뒤 일본에선 일본어 번역판이 출간됐다. 역수입된 무사도는 일본 국민도덕으로 주입되며 일본을 상징하는 정신문화가 됐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지배계층은 니토베가 제창한 부시도 개념 중에서 절대적인 충성 등 자신들에게 유리한 부분을 특히 강조하는 형태로 변형시키는 바람에 무사도는 사실상 일본 군국주의를 미화하는 정신이 됐다고 한다.
인터넷 조선왕조실록에는 ‘무사도(武士道)’라는 말이 검색되지 않는다. 조선왕조시대에 이 단어가 전혀 쓰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우리나라 언론은 일본의 영향을 받아 일제강점기 때부터 ‘무사도’라는 단어를 썼다. 조선일보 1935년 2월6일자 ‘조선유도(朝鮮柔道) 계(界)에제언(提言)함 【1】’ 기사는 ‘유도(柔道)가 현금(現今)에 와서는 그 원리무사도(原理武士道)의 정신(精神)의 권화(權化)에서 약간(若干)의 취미성(趣味性) (무사도(武士道) 에는 취미성(趣味性)이 업슴은 물론(勿論)이다’라며 유도와 무사도의 관련성에 대해 전했다.
20세기 초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세게는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인 ‘무사도’와 사무라이 전통 무술인 ‘유술(柔術)’을 기초로 만든 ‘유도(柔道)’에 매료돼 군과 경찰에 정규 교육 프로그램으로 채택했다. 유도의 원형인 일본식 한자어 ‘柔術’은 일본어 발음을 그대로 써서 영어로 ‘Jujutsu’라고 말하는데, ‘Ju’는 부드러움을 뜻하며, ‘’jutsu’은 기술을 뜻한다. 일본의 유술을 토대로 만든 브라질의 무술 ‘주짓수수(jiu-jitsu)’는 일본어 발음을 포르투갈어로 옮긴 것이다.
유도는 원래 어느 한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다. 일본에서 오래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연구를 거듭하며 발전시켜 온 전통 무예를 바탕으로 했다. 유도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가노지고로(嘉納治五郞, 1860-1939)이다. 가노가 메이지 시대인 1882년 ‘강도관(講道館)’을 세우고 청소년들에게 유도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유도의 기원이다. (본 코너 1231회 ‘왜 ‘유도(柔道)’라고 말할까‘ 참조)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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