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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204] ‘초대 양궁여왕’ 김진호의 세계선수권대회 제패는 한국스포츠사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2024-09-11 07:26

'초대 양궁여왕' 김진호 한국체대 교수[연합뉴스 자료사진]
'초대 양궁여왕' 김진호 한국체대 교수[연합뉴스 자료사진]
한국 양궁사에서 ‘초대 양궁여왕’으로 공인받은 김진호가 처음으로 주목받는 선수로 등장한 것은 1977년이었다. 한국 양궁이 몬트리올 올림픽 무대를 밟지 못한 이듬해였다. 김진호는 당시 전국체전에서 혜성같이 떠올랐다. 경상도 예천의 두메산골 출신 여고 1년생이 여고 개인전서 우승을 한 것이다. 활시위를 당기기 시작한 지 2년 남짓한 신출내기가 내로라는 선배들을 제치고 여고부 개인전을 제패했다. 한국 양궁을 세계 정상으로 이끈 김진호의 데뷔는 결코 화려하다고 할 수 없었지만 주목해볼만한 일이었다.

김진호는 이후 상비군 선수로 발탁돼 본격적인 지도를 받으면서 기량이 크게 향상됐다. 양궁 뿐 아니라 스포츠 전 종목을 통틀어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세계신기록을 작성해 놀라게 했다. 김진호는 한국양궁의 첫 국제무대였던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 여자 개인전에서 우승, 첫 금메달을 차지했다. 그 다음해 베를린서 열린 제30회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을 단숨에 세계 양궁 강국으로 끌어올리며 자신도 초대 양궁여왕으로 입지를 굳혔다. 이 대회서 김진호는 단체전, 개인종합, 30m, 50m, 60m 등 6개 부문 중 5개 부문을 휩쓸며 5관왕을 차지했다.

한국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서 레슬링 양정모가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지만 그때까지 세계선수권대회서 우승을 한 것은 레슬링 장창선과 여자탁구 단체전 두 번뿐이었다.

원로 체육언론인 오도광은 이야기 한국체육사 양궁편 ‘퍼펙트골드로의 장정’에서 “김진호의 여자 양궁 우승은 한국체육사서 세 번째로 기록되나 가장 완벽하고 통쾌한 승리였다”고 기술했다. 한국스포츠 사상 최초로 세계를 제패한 레슬링 장창선은 1966년 세계레슬링선수권대회 자유형 플라이급서 일본 요시다 요시가쓰와 동률수위였으나 계체량 결과 체중이 가벼워 극적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1973년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대회서 한국여자팀은 이에리사·정현숙의 활약으로 중국을 물리치고 단체전 우승을 차지했지만 개인전서 한국 선수는 모두 탈락했다. 따라서 단체전과 개인전을 모두 석권한 김진호의 세계제패는 거의 완전무결한 성적이며, 새로운 양궁왕국의 등장을 의미하는 이정표였다는 것이다.

양궁여왕 김진호도 언제나 영광만 누린 것은 아니다. 올림픽서 연속 불운으로 두 차례나 좌절을 겪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서방국가들의 집단 불참으로 출전을 포기해야 했고, 1984년 LA 올림픽선 경기운영 실패로 후배 서향순에게 금메달을 양보해야만 했다. 김진호는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3관왕을 마지막으로 현역 선수에서 은퇴, 지도자의 길로 나섰다. 현재는 한국체대 양궁 지도교수로 근무하며, 2024 파리 올림픽 여자 양궁 3관왕 임시현을 배출하는 역할을 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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