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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201] 한국 양궁 세계화, 장애인이 더 빨랐다

2024-09-07 07:20

김옥금(왼쪽)이 2024 파리 패럴림픽 양궁 혼성 단체전(스포츠등급 W1) 동메달결정전에서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파리=연합뉴스]
김옥금(왼쪽)이 2024 파리 패럴림픽 양궁 혼성 단체전(스포츠등급 W1) 동메달결정전에서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파리=연합뉴스]
장애인 양궁은 장애인 운동 경기 중에서 가장 먼저 실시된 종목이다. 1972년 독일 뮌헨에서 개최된 장애인올림픽경기대회에서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올림픽 초창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가 퇴출당한 양궁은 52년만에 뮌헨올림픽부터 올림픽 무대에 복귀하기 전에 이미 장애인올림픽 종목으로 실시됐다. (본 코너 1181회 ‘왜 양궁이라 말할까’ 참조)

한국서 양궁은 장애인이 정상인보다 한발 앞서 국제무대에 진출했으며 입상 성적도 먼저 올렸다. 상이군경들의 단체인 대한상이군협회는 1967년 7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제16회 세계척추장애자체육대회(ISMG)에 고근홍, 김근수 등 선수 2명과 한국 양궁 대부인 석봉근을 코치를 파견했다. 이 대회는 양궁 대회가 아니지만 한국 선수가 양궁 경기를 통해 국제스포츠무대에 진출한 첫 대회로 기록됐다. 한국은 이 대회에 매년 선수를 출전시켰는데, 1970년 대회서 이환공이 양궁 개인부 2위에 입상해 은메달을 차지했다.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따낸 최초의 양궁 메달이었다.

1972년 8월 독일 하이델베르그서 열린 제4회 패럴림픽 양궁 여자개인선서는 조금임이 금메달을 획득했다. 조금임은 양궁 복합경기인 다처리서도 김근수와 함께 준우승을 차지해 금메달과 은메달 1개씩을 따냈다. 양궁 패럴림픽 출전은 이 대회가 첫 시작이었으며, 장애인 양궁 선수는 패럴림픽 첫 무대서 금메달을 명중시켰던 것이다.

같은 해 열린 뮌헨올림픽서 궁도협회는 양궁이 올림픽 무대에 복귀하자 후보선수를 선발해 체육회에 올림픽 출전을 요청했으나 국제경쟁력이 약하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국 양궁은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 양궁여자 개인종합서 김진호가 첫 국제대회 금메달을 차지했다. 김진호는 1979년 이탈리아 푼타알라서 열린 제31회세계양궁선수권대회 개인전서 첫 세계대회 금메달을 획득했다. 올림픽서는 1984년 LA 올림픽 여자개인전서 서향순이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선수들이 따낸 금메달을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대회, 올림픽 모두 첫 출전한 무대에서 따낸 것이다.

장애인 양궁은 정상인보다 11년 앞서 국제무대에 진출했으며, 국제대회 금메달 획득도 정상인보다 8년이나 앞질렀다. 장애인 양궁이 빨랐던 것은 1960년대부터 대한상이군경회가 각별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때문이다. 한국전쟁에서 부상을 당하며 신체장애의 불운을 겪는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재활의욕을 북돋우는데 알맞은 스포츠로 양궁을 적극 보급했던 것이다. 양궁이 장애인들에게 알맞은 스포츠로 인정받은 것은 신체운동이 격렬하지 않고 심리적인 안정상태에서 정신집중만 하면 장애인도 얼마든지 경기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상이군경은 양궁경기에 몰입하면서 실의에서 빠져나와 좌절감을 극복할 수 있었고, 자신이 발사한 화살이 표적에 꽂히는 것을 보며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네이버 뉴스라이버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74년 5월11일자 ‘휠체어의 양궁(洋弓) 준우승 정상인(正常人) 누른 주성규(朱成圭)씨’ 기사는 ‘불구(不具)의 몸으로 휠체어에의지한 주성규(朱成圭)씨(32·원호병원)가 10일 끝난 제8회전국종별양궁(種別洋弓)선수권대회일반부90m에서 2위를차지,눈길을 끌었다. 전방 모부대 근무중 지난 65년에 척추를 다쳐 제대한 주(朱)씨는 현실을 박차고 나갈 정신력을 기르기위해 3년전부터 궁도(弓道)를시작—.취미삼아 해온것이이젠 프로에 가까운 실력을 쌓았다. 71년 영국(英國)에서 열린 세계 신체장애자대회 양궁(洋弓)종목에서 김(金)메달을 따기도한주(朱)씨는 작년 종별대회때는70m 경기에서 2백62점을얻어 한국(韓國)신기록을 세우기도했었다.(이기록은 그후깨졌다)『정신을 집중시켜 잡념을없애고 건강을 위해서는양궁(洋弓)이 최상이다』고 밝힌주(朱)씨는『가까운 장래의 희망이라면 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 출천,꼭 메달을 따는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맨발의 마라톤왕’ 아베베(1932-1973)는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하반신마비의 불운을 당하고도 좌절하지 않고 휠체어에서 불굴의 투지를 발휘하며 패럴림픽 양궁 선수로 재기해 세계를 감동시켰다. 에티오피아 군인으로 한국전쟁에도 참전하기도 했던 아베베는 1960년 로마 올림픽 마라톤서 맨발로 달린 끝에 올림픽신기록으로 우승을 차지, 마라톤에 검은 돌풍을 처음으로 일으켰다. 또 맹장수술을 받은 지 불과 두 달만에 1964년 도쿄 올림픽에 출전, 올림픽 사상 최초로 마라톤 2연패를 기록하는 등 세계스포츠사에 수많은 위업을 남겼다. 아베베는 1969년 영국에서 열린 장애인 양궁대회에 출전하여 9위를 했다. 1970년 아베베는 노르웨이에서 열린 장애인 대회에서 출전, 16명이 겨룬 개가 끄는 크로스컨트리 썰매 경기에서 1시간16분17초로 우승을 차지했다. 1973년 41세의 나이로 교통사고와 관련된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본 코너 1188회 ‘마라톤 영웅 아베베가 ‘패럴림픽 양궁’ 선수가 된 까닭‘ 참조)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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