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용어로 ‘대부’라는 말은 영어 ‘Godfather’를 번역한 것이다. 영어용어사전에 따르면 ‘Godfather’은 신을 의미하는 ‘god’와 아버지를 의미하는 ‘father’의 합성어로 세례식에서 한 사람을 후원하는 뜻을 갖고 있다. 12세기 후반 ‘Godfaeder’에서 기원해 변형됐으며, 1963년 이탈리아 폭력조직 ‘마피아’의 의미로 쓰였다. 1969년 마리아 푸조의 소설 제목과 영화 제목으로 이 말이 크게 유행했다.
우리나라 언론에서 한국양궁의 대부로 불렸던 이는 석봉근(1923-1996)이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95년 8월3일자 ‘한국양궁‘전도사’ 화제의 2人(인)‘ 기사에 ’한국양궁의 대부‘ 석봉근씨의 아들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 이탈리아 여자팀 코치로 출전한 석동은씨를 소개했다.
원로 체육기자 오도광이 쓴 이야기 한국체육사 ‘퍼펙트골드로의 장정’에서 석봉근씨는 한국양궁의 개척자로 소개됐다. 석봉근이 한국양궁의 개척자임은 분명하지만 양궁이 언제 어떠한 경로로 한국에 도입되었는지는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본 코너 1181회 ‘왜 양궁이라 말할까’ 참조)
석봉근은 1959년부터 양궁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한국에 양궁을 소개하고 보급에 앞장섰다. 경희대 체육과를 졸업하고 체육교사로 근무하던 석봉근은 청계천의 고물상서 양궁활을 처음 발견하고 구입해 양궁 보급에 힘썼다고 한다. 자신이 근무하던 서울 수도여중고에 양궁부를 창단하고 부원을 보집했다. 석봉근은 양궁을 하기 전에는 배드민턴을 지도했다.
석봉근은 거의 혼자 힘으로 고군분투하며 양궁 보급에 힘썼는데, 초기에 양궁이라는 명칭 조차도 등장하지 않아 처음에 양궁은 국제궁술로 불리웠다. 석봉근이 불모지인 양궁 보급에 동분서주하고 있을 때, 양궁 마니아인 주한 미 8군의 밀란 엘로트 중령이 대한궁도협회로 찾아와 양궁장비를 기증하고 시범까지 보이면서 석봉근과 함께 손을 잡게 됐다.
석봉근은 중등체육교사로 서울 시내 중고교를 순환 하면서 성동중, 서울북중, 행당여중, 무학여중 등에 양궁부를 창설해 많은 제자를 키워내 한국양궁의 대부로 인정받았다. 그가 배출한 제자는 아들 석동은을 비롯해 한종일, 강문희, 신창순, 김형탁, 김신자, 김순자, 백명희, 정미자, 김애리, 이항선, 조춘봉 등 양궁 1세대들이다. 석동은은 그의 장남으로 아버지의 지도를 받아 한국양궁 초창기에 1인자 자리에 올랐으며, 선수 생활을 마친 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지도자로 나섰다.
석동근은 1969년 대한궁도협회가 국제 궁술부를 신설할 때, 국제담당이사를 맡았으며, 1980년대 대한양궁협회가 출범할 때, 전무이사를 맡아 정몽준 회장을 보좌해 양궁 협회 전반적일 업무를 담당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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