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생인 빌리 진 킹은 1960년대와 70년대 중반까지 여자 테니스계를 풍미했던 여자 테니스 역사상 최고의 선수였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총 12개의 그랜드 슬램 여자 단식(오픈 시대 이후 8개)을 포함해 총 39개의 그랜드 슬램 우승을 거둘 정도의 대단한 기록을 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윔블던에 강해 20개의 우승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당시 남녀 선수 간의 상금 격차에 대해 항의하며 주도적으로 여성테니스협회(WTA)를 설립하였으며, 상금이 평등하지 않으면 출전하지 않는다는 압박을 통해 US 오픈을 시초로 테니스 대회의 남녀 상금 규모가 동등해지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현재의 WTA 투어의 전신이 되는 '버지니아 슬림 서킷' 창설하고, WTA 발기인 중 한 명이며, 초기 WTA의 운영에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오늘날 테니스에서 여성 선수에 대한 대우가 모든 스포츠 종목을 통틀어 가장 좋다고 평가받는 건 빌리 진 킹의 주도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녀는 레즈비언으로, 여성 인권 운동 외에도 성소수자의 권익 신장을 위해 힘쓰는 성소수자 인권 운동가이기도 하다.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 선정 ‘세기의 여성들’ 중 운동선수 부분에 뽑혔으며, LIFE 지 선정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인’ 에도 이름을 올렸을 정도로 미국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 스포츠의 상징적인 존재 중 하나이다.
1973년에 은퇴한 지 한참 된 55세 바비 릭스와 성 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당시 그는 30살이었다. 릭스는 여자 테니스 경기가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에 남자인 자신이 5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자 선수들을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하며 킹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킹이 거절하자 대타로 마거릿 코트와 맞붙어서 세트스코어 2-0(6-2, 6-1)으로 가볍게 완파하며 대대적인 관심을 끌었다. 릭스는 더욱 강렬한 말로 여자 테니스 선수들을 조롱하며 킹을 자극했고 결국 대결이 성사되었다.
킹은 9천만 명이 시청하는 해당 경기를 꼭 승리해야 하는 강한 의무감을 가졌으며, 결국 세트 스코어 3-0(6-4, 6-3, 6-3)으로 이기면서 릭스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줬다. 이 경기의 결과로 1973년 '타임'지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고, 1975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 미국 여성들 중의 한 명으로 꼽혔으며, '라이프'지가 선정한 '20세기 가장 중요한 미국인 100명'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 경기는 2017년에 영화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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