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정작 선수들 유니폼에는 각국의 국기나 국가 이름 대신 축구협회 엠블럼이 부착돼 있다. 이는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한 월드컵 경기는 원칙적으로 국가대항전이 아니라 축구협회간의 경기라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FIFA는 홍콩이나 괌처럼 독립국이 아니더라도 축구협회가 있다면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회원수가 UN보다 많다. 2016년 5월 지브롤터와 코소보까지 회원 가입을 승인해 현재 FIFA 회원은 211개에 달한다. FIFA는 1904년 창설 때부터 국가보다 축구협회 위주로 회원국을 받아들였다.
FIFA 회원국 가운데는 한 나라에서 축구협회를 여러 개 갖고 있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영국을 꼽을 수 있다. 축구 발상국 답게 영국에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등 4개의 축구협회가 있다. 웨일스는 카타르 월드컵에 잉글랜드와 함께 1958년 스웨덴 월드컵 이후 64년만에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다. (본 코너 13회 ‘월드컵에서 출전 선수 유니폼에 '국기' 대신 축구협회 '엠블럼'을 다는 이유’ 참조)
FIFA가 왜 경기 전 국가 연주를 허용하는 가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거기에는 FIFA의 이중적인 잣대가 작용한다. FIFA 회원국을 늘리기 위해선 축구협회를 기준으로 가입신청을 받아들이는 반면, 세계 최고의 단일 이벤트인 월드컵 대회에는 국가간 경쟁을 불어넣기 위해 국가 연주를 하는 것이다. 1930년 우루과이에서 첫 대회를 가진 월드컵은 개최 도시 이름을 대회 타이틀에 쓰는 올림픽과 달리 국가 명칭을 대회 타이틀에 사용했다. 1930 우루과이 월드컵, 1934 이탈리아 월드컵, 1938 프랑스 월드컵, 1950 브라질 월드컵, 1954 스위스 월드컵, 1958 스웨덴 월드컵, 1962 칠레 월드컵, 1966 잉글랜드 월드컵, 1970 멕시코 월드컵, 1974 서독 월드컵,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1982 스페인 월드컵, 1986 멕시코 월드컵, 1990 이탈리아 월드컵, 1994 미국 월드컵, 1998 프랑스 월드컵, 2002 한일 월드컵, 2006 독일 월드컵, 2010 남아공 월드컵, 2014 브라질 월드컵, 2018 러시아 월드컵, 2022 카타르 월드컵 등으로 국가명을 붙인다.
국가간 경쟁을 부채질하는 FIFA의 ‘정치화’로 인해 그동안 월드컵은 세계 정치, 외교의 복잡한 문제들이 드러내는 무대이기도 했다. 월드컵으로 인해 1969년 멕시코 월드컵 지역 예선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경기 직후 4일간 실제 ‘축구 전쟁’이 벌어졌다. 한국과 일본, 한국과 북한 등 역사적으로 ‘앙숙’ 관계를 이룬 국가와 이념과 체제가 다른 국가간에 치열한 라이벌전이 펼쳐졌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선 미국과 이란, 프랑스와 튀니지 등도 복잡한 정치, 외교적인 문제가 얽히며 양국 국가 연주 중에 경기장에서 야유를 퍼붓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FIFA는 축구를 통해 세계 평화와 화합에 기여한다는 목적으로 올림픽에서 영감을 받아 월드컵을 만들었지만 국가 경쟁을 유도하는 이중적인 잣대를 활용해 막강한 권력과 수익을 챙긴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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