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용어사전 등에 따르면 ‘pace’는 걸음을 의미하는 라틴어 ‘passus’가 어원이다. 원 뜻은 어떤 일이 일어나는 속도를 의미한다. 스포츠에서 ‘pace’라는 용어를 가장 먼저 쓴 것은 경마였다. 경마는 가장 오랜된 스포츠라고 할 수 있다. 서기 200년 영국 요크셔지역에서 로마군이 경마를 처음으로 가졌다는 기록이 있다. 영국은 현대 경마의 모든 개념과 용어를 만들어냈다. 폴 딕슨의 야구사전에 의하면 미국 야구에선 1865년 6월29일자 뉴욕 헤럴드에서 ‘pace’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다. 야구에서 페이스는 ‘체인지 오브 페이스(change of pace)’라는 말로도 활용됐다. 일명 ‘체인지업(change up)’라고 칭하는 이 말은 투수가 던지는 공의 구질 중의 하나이다. 투수가 직구와 동일한 포즈로 공을 던지지만 플레이트 근처에 이른 공은 갑자기 아래로 휘어지며 속도가 뚝 떨어지는 구질이다.
육상과 수영 등에선 ‘페이스’는 보폭과 속도를 적절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마라톤의 경우 페이스를 지키지 않고 달렸다가는 완주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공식 경기에서 작전을 세워 ‘페이스메이커(pacemaker)’를 내세우기도 한다. 이는 같은 팀 선수가 적절하게 뛸 수 있도록 속도를 제어하는 일을 해주는 선수를 말한다. (본 코너 799회 ‘왜 ‘페이스메이커(Pacemaker)’라 말할까‘ 참조)
우리나라 언론에서 페이스라는 말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사용했다. 조선일보 1933년 1월7일자 ‘1932—33연개정(年改正) 농구규칙해설(籠球規則解說)’기사는 ‘제칠장제십삼조(第七章第十三條) (신조항(新條項)) 【조문(條文)】『페이스·까-딍』이라함은[뽈]에는 무관심(無關心)하고상대방경기자(相對方競技者)에면(面)하야 적(敵)의동(動)함에 따라동(動)하야 그의전진(前進)을방해(妨害)하는것임’이라고 전했다. 여기서 ‘페이스·까-딍’은 영어 ‘pace cutting’을 우리말로 표기한 것이다. 상대 흐름을 끊는다는 뜻이다.
공식 수영경기에서 좋은 기록을 내기 위해선 페이스를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 수영을 모두 마칠 때까지 총 스트로크를 몇 번 정도 해야하며, 속도를 어느 정도를 해야 할 지를 정하지 않고 경기를 하면 제대로 된 기록과 성적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수영 선수들은 초 단위까지 계산해 헤엄치는 거리와 속도를 조절해 세계 기록을 내거나 최고 성적을 올리기 위해 평소 많은 연습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 수영의 대들보 황선우는 자신의 올림픽 첫 무대였던 2020 도쿄올림픽에서 소중한 경험을 쌓았다. 남자 자유형 200m와 자유형 100m에서 나란히 결승에 진출했는데, 초반 레이스는 메달권 진입이 가능한 수준이었지만 페이스 조절에 실패하면서 막판에 뒤로 처지는 아쉬움이 있었다. 도쿄올림픽에서 얻은 교훈을 자양분으로 삼은 그는 올해 2022 국제수영연맹(FINA)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자유형 200m에서 1분44초47만에 터치패드를 찍어 자신이 보유한 한국 기록을 0.15초 단축하며 2위로 경기를 마쳤다. 자신의 생애 첫 롱코스(50m) 세계선수권 대회 메달이자 박태환 이후 11년 만에 나온 한국 수영의 쾌거였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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