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사 영국의 화학업체 INEOS가 켑초게가 '2시간 벽'을 돌파할 수 있도록 페이스메이커를 두는 등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맞춰 놓았다. 마라톤 레이스에 가장 적합한 기온 7~14도, 습도 80% 등의 상황을 맞추기 위해 오전 8시15분에 출발했다. 또 공기저항을 줄이고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게 5명의 페이스메이커가 V자 모양으로 앞에서 달리고 또한 2명은 킵초게의 좌우에서 함께 달렸다. 페이스메이커들이 킵초게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4㎞를 달릴 때마다 교체했다. 킵초게의 이벤트를 통해 페이스메이커의 도움을 받는다면 기록을 크게 향상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됐던 것이다.
페이스메이커는 영어 ‘Pacemaker’를 발음대로 우리말로 표기한 외래어이다. 이 말은 보행 걸음걸이를 뜻하는 ‘pace’와 제조자를 뜻하는 ‘maker’의 합성어이다. 보행을 돕는다는 의미이다. 육상 중거리 이상의 경기나 자전거, 스피드스케이팅 등에서 기준이 되는 속도를 만드는 선수라는 뜻으로 쓰인다. 의학에선 전극을 심장에 장치해 주기적인 전기 자극으로 심상을 수축시킴으로써 심장 박동을 정상으로 유지하는 장치를 의미하기도 한다.
페이스메이커는 1970년부터 유럽과 미국 마라톤 대회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보통 마라톤대회에서 30km까지 멈추지 않고 달린다. 아마추어 대회에선 주최측이 시간대별로 페이스메이커를 운영한다. 일반적으로 풀코스에선 3시간부터 5시간까지, 20-30분 간격으로 페이스메이커를 둔다. 국내에선 1999년 춘천 마라톤대회부터 아마추어 주자를 위한 페이스메이커를 운영했다.
국내 엘리트 마라톤에서도 페이스메이커를 두고 기록 단축에 주력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황영조도 원래는 페이스메이커였다. 원래 장거리 선수였던 황영조는 1991년 동아마라톤 대회에서 페이스메이커로 뛰다 3위로 깜짝 입상을 한 뒤 국가대표로 선발돼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생이 우승을 차지한 뒤 대한민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국내 언론에서 페이스메이커라는 말은 1980년대부터 등장했다. 조선일보 1986년 11월2일자 ‘사상최대(最大)255명…"신기록 내자"’ 기사는 제40회 전국마라톤선수권대회 예고를 알리면서 ‘지난60년 14회대회 우승자인이상철(李相鐵)씨(숭문고) 는『상대의눈치를 보지 않고 처음부터 자신의 페이스대로 내달리는 소신있는 레이스를 펼쳐야만 호기록도 나오고페이스메이커로서 기록경쟁에 불을 댕길젓』이라며 초반부터의 역주를 주문했다’고 전했다.
페이스메이커의 역할은 선수들이 달리는데 동기부여를 해주기도 한다. 자기보다 앞서 나가는 페이스메이커를 보며 적절한 페이스를 지켜 달리는 동시에 뒤처지지 않고 속도에 맞춰 달리는 동력을 준다. 시각장애자 달리기 대회에서 페이스메이커는 선수들을 위한 안내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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