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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790] 왜 ‘마녀(魔女)’라고 말할까

2022-09-02 07:44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과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 포환던지기 2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백옥자는 현역시절 '아시아의 마녀'로 불렸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과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 포환던지기 2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백옥자는 현역시절 '아시아의 마녀'로 불렸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마녀(魔女)라는 말에선 좋은 이미지가 연상되지 않는다. 사전적 정의만 봐도 그렇다. 마력을 지닌 여자,여자마귀, ‘악독한 여자’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스포츠에선 마녀라는 말을 별명으로 많이 쓴다. 동양의 마녀, 아시아의 마녀, 핑퐁의 마녀, 트랙의 마녀 등으로 여자종목에서 마치 마술을 부리는 마녀처럼 불세출의 성적을 올렸을 때 사용한다.

마녀라는 말은 원래 한자어이다. ‘마귀 마(魔)’와 ‘여자 녀(女)’가 합해진 단어이다. 마(魔)‘라는 한자어는 중국에서 유입된 불교어이다. 고대부터 불교와 관련된 이야기나 설화 속에서 등장한다. 하지만 마녀라는 말은 일본에서 많이 사용해 일본식 한자어처럼 돼 버렸다. 일본대백과사전 등에 따르면 1868년 메이지 유신이후 서양문화를 본격 도입하면서 일본에서 영어 ’witch’의 번역어로 ‘마녀’라는 말을 쓰게 됐다고 한다.

영어용어사전 등에 의하면 'witch'라는 단어는 언어학적으로 정확한 어원이 밝혀지지 않았다. 언어학자에 따라 상당한 의견 차이가 있다. 'Witch'라는 단어는 한자문화권에서 흔히 마녀로 번역되지만, 본래 ‘witch’ 자체는 성별에 상관없이 요술을 부리는 이들 전반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그러나 중세시대 기독교의 박해에 의해 마녀사냥(witch hunt)이 기승을 부린 이후로는 'witch=여성'이라는 관념이 생겨나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남자 마법사를 뜻하는 ‘wizard’와 대조적이다.

일본 스포츠에서 마녀라는 말을 유행시킨 것은 여자배구였다. 서양 언론 등은 1960년대 세계최고의 일본여자배구팀에 ‘oriental witches’라는 닉네임을 붙였다. 동양의 마녀라는 의미였다. 일본여자선수들은 서양인들에 비해 월등히 작았지만 전광석화 같은 빠른 시간차 공격과 기계같은 조직력을 앞세워 마치 마술을 부리는 마녀와 같은 모습으로 비쳐져 이런 별명을 얻게됐다.1961년 유럽 원정에서 일본여자팀은 24연승을 구가했으며,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소련(현 러시아)를 꺾고 첫 금메달을 획득했다. (본 코너 457회 ‘‘동양의 마녀(魔女)'와 한국여자배구’ 참조)

우리나라에서 마녀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선수는 1970년대 여자 포환던지기에서 아시아 최강의 실력을 발휘했던 백옥자였다.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 2연패를 차지한 백옥자에 대해 언론 등에서 ‘마녀’라는 별명을 붙였다. 1978년 아시아육상경기연맹이 선정하는 최우수선수로 백옥자가 선정되면서 ‘아시아의 마녀’라는 별명으로 불리게됐다.

조선일보는 1973년 4월11일자 ‘세계정상(世界頂上)에 오르기까지 <상(上)> 「핑퐁의 마녀(魔女)」‥‥이(李)에리사 스토리’라는 기사에서 이에리사를 ‘핑퐁’의 마녀‘라고 전했다, 한국 탁구사상 중국을 물리치고 첫 세계선수권대회 단체전 우승을 차지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이에리사에 대해 이 기사는 ’「이에리사를 가졌을때 둥근달이 마을 뒷산에서 떠 오르는 태몽을 꾸었다」는 어머니 조씨는 지금 생각하면 아마 그 태몽이 오늘의 영광을 미리 알려준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땐 인도의 여자 육상 4관왕 우샤를 ‘인도의 마녀’, ‘트랙의 마녀’ 등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마녀라는 말은 이제 부정적인 어감 때문인 듯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 언론 등에서는 별로 쓰지 않는 것 같다. 언어가 시대에 따라 많이 달라지는 모습을 느낄 수 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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