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선수들은 악천후 속에서 경기를 가졌다. 올림픽 농구 규칙도 현재와는 많이 달랐다. 경기하는 팀들은 백코트 등에 제한 시간이 없었다. 팀 당 선수는 7명만 참가할 수 있었다. 현재 12명으로 구성된 팀과는 달리 2명만 교체 선수로 허용했던 것이다. 당시 1만명 관중이 올림픽 농구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인 출신으로 이성구, 장이진, 염은현이 일본 팀의 일원으로 처음 출전했던 것도 베를린올림픽에서였다. 일본은 당시 2승5패로 13위에 랭크됐다. 네이스미스는 베를린올림픽에서 입상팀에게 직접 메달을 수여한 뒤 3년 후인 1939년 타계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은 국제농구연맹(FIBA)의 관심을 받았으며 국제경기 규정 개정으로 이어졌다. FIBA는 미래의 국제경기를 위해 새로운 스타일의 플레이와 규칙을 채택했다. 2차세계대전으로 1940년과 1944년 올림픽이 중단된 후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부터 처음으로 농구 경기가 실내에서 열렸다. 참가팀들은 이전보다 훨씬 뛰어난 경기력을 선보였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군 병사들 사이에서 농구가 인기를 끌며 유럽 여러 나라로 퍼져 나갔기 때문이었다. 한국은 1948년 런던올림픽에 출전해 3승5패로 8위를 기록했다. 정상윤 감독이 이끈 대표팀에 장이진, 김정신, 조득준, 안병석, 오수철 등이 출전했다.
당시 올림픽 규칙에 따르면 모든 출전 선수들은 아마추어 신분이었다. 미국은 미국프로농구(NBA) 선수 대신에 대학 선수들을 출전시켰다. 선수들은 FIBA에 의해 급여 대신 수당을 받고 출전했다.
1952년부터 소련이 출전하면서 미국과 소련 사이에 본격적인 라이벌 관계가 형성됐다. 미국과 소련은 1988년까지 라이벌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미국은 1936년부터 1968년까지 7회 연속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 전설적인 스타 빌 러셀(206cm)이 압도적으로 큰 키와 힘으로 앞세워 올림픽 코트를 장악하기도 했다. 미국은 1968년까지 7회 연속 올림픽 금메달을 독차지했다.
하지만 소련의 견제도 만만치 않았다. 소련은 1972년 뮌헨올림픽 결승에서 미국에 예상을 뒤엎고 51-50으로 승리, 첫 금메달을 차지했다. 미국은 올림픽 사상 첫 패배를 기록했다. 이 경기는 8억명의 세계인이 TV를 통해 경기를 지켜봤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도 소련은 준결승에서 미국을 꺾고 결승에 진출해 금메달을 획득했다. 소련에 패배한 미국은 동메달에 그쳤다.
세계 농구 최고 강국이라는 자존심이 꺾인 미국은 1989년 FIBA 올림픽 규칙을 개정토록 움직여 아마추어만 출전하던 올림픽에 프로농구 선수들이 출전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마이클 조던을 주축으로 한 NBA 최고의 멤버들로 구성된 ‘드림팀’을 출전시켜 막강한 전력을 과시했다. 미국 드림팀은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매 경기 40점 이상 차이를 보이며 가볍게 워밍업 하듯 금메달을 차지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후에도 미국 드림팀은 올림픽 금메달을 휩쓸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놓친 것이 이례적인 일이었다. 당시 미국은 3위를 했으며 아르헨티나가 금메달을 가져갔다.
남자들의 스포츠였던 올림픽 농구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부터 여자 경기가 첫 선을 보였다. 미국 여자대표팀은 1996년부터 2016년까지 6회 연속 출전한 대회 등 10개 대회에서 8회 우승을 차지했다. 소련은 1976년, 1980년과 연합팀이 참가한 1992년 3회 금메달을 획득했다. 한국여자농구는 1984년 LA올림픽 결승에서 미국에 85-55로 져 사상 처음으로 은메달을 안았다. 한국남자농구는 메달을 획득한 적이 없으며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올림픽 본선에도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2017년 6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2020 도쿄올림픽부터는 3대3 농구가 남녀 모두 정식 종목으로 채택하기로 결정했다. 코로나 19의 대유행으로 1년 연기된 2020 도쿄올림픽에서 3대3 농구는 세계 농구팬들의 주목을 받으며 인기리에 벌어지고 있다. 야외에서 테니스 코트를 빌려 쓴 올림픽 농구가 마치 쇼처럼 화려한 실내 조명을 받으며 최고의 프로선수들이 경연하는 가장 인기있는 올림픽 종목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했기 때문이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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