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현대카드 슈퍼매치 고진영 VS 박성현’ 스킨스게임이 벌어질 영종도 스카이72 골프앤 리조트 오션 코스 1번홀은 세컨드 샷을 할 때 그린 공략에 매우 신경을 써야 한다. 그린이 다소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볼을 어떻게 띄워야 할 지 고민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이 홀의 그린은 페어웨이 보다 그린이 좀 높게 솟아 있다. 보통 골퍼들은 이런 그린을 보면 ‘포대(砲臺) 그린’이라고 부른다.
그동안 골프 용어로 별 생각없이 막연하게 써온 용어 중의 하나가 ‘포대 그린’이다. 군대에서 쓰는 포대처럼 평지보다 높아서 홀컵이 보이지 않는 그린을 말한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포대는 적의 포격으로부터 포, 포수, 탄약 등을 방호함과 동시에 아군의 포격에 편리하도록 구축된 축성물이다. 지난 1960년대 2차 세계대전을 다룬 대표적인 전쟁영화였던 ‘나바론 요새’로부터 근자에 논란이 됐던 ‘사드 포대’까지 포대는 은폐, 엄폐가 철저히 된 작은 요새이다.
포대 그린의 영어말은 ‘엘리베이티드(elevated) 그린'이다. 높은 그린이라는 뜻이다. 영어말에는 분명 군대에서 쓰는 포대라는 의미가 없다. 그럼 어떻게 포대라는 말이 그린 앞에 붙게 된 것일까.
이 코너 7탄 ‘주체의식을 일깨운 한국과 일본 야구’에서 일본 근대문학에 많은 영향을 준 일본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가 1905년 발표한 그의 대표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고양이의 눈을 통해 야구를 비유적으로 표현했던 것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는 소설적인 재미를 위해 야구를 군사적으로 분석했다. 야구장 마운드를 ‘포대’로, 타자를 ‘장군’으로 각각 묘사했다. 야구장 내야 한 가운데에 자리한 투수 마운드를 포대가 요충지를 차지한 것처럼 보았던 것이다. 이처럼 일본의 지식인도 서양에서 처음 들어온 ‘이상한 스포츠’인 야구를 군대적인 관점으로 이해했다.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골프도 좀 색다르게 봤던 것 같다. 일반인들은 서구에서 들어온 골프는 오랜동안 특권층만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포대 그린’이라는 말은 일반인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군대문화와 직접 연관이 있었던 듯하다. 조선왕조실록을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면 포대라는 말이 여러번 등장한다. 대포가 처음 선보인 임진왜란 이후 포대라는 말이 12번 나온다. 이미 포대라는 말을 조선시대에도 군사용으로 썼다는 반증이다.
일제시대때 처음 도입된 골프는 1943년 경성CC 군자리코스(예전 군자리 서울CC, 현재 어린이대공원)가 일제의 전쟁 수행 용도로 병참 기지화해 식량 증산을 위한 논과 밭으로 전용해 폐장되면서 한반도에서 골프장은 한 곳도 남아있지 않았다. 해방 이후 이승만 대통령은 주말이면 일본으로 골프하러 가는 주한미군이나 외교사절을 국내에 잡아두기 위해서 골프코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군자리코스 재건작업을 지시했다. 1950년 한국동란을 겪고 난 뒤 마무리 공사를 해 1954년 서울CC 군자리 코스가 개장됐다. 5‧16 쿠데타 이후 박정희 군사정권은 골프를 긍정적으로 보고 군 장성들의 코스 출입을 대거 허가했다. 군 장성들은 주로 유엔군 장성들과 자주 골프를 즐겼다. 1966년 태릉골프장까지 개장하면서 용산 미군골프장과 함께 골프는 대표적인 장성들의 스포츠가 됐다. 아마도 당시 많은 장성들은 솥뚜껑처럼 우뚝 솟은 그린 등을 군인의 눈으로 봤을 때 포대처럼 보여 ‘포대 그린’이라고 불렀고, 이것이 널리 퍼지면서 일반화돼지 않았나 싶다.
이를 보면 포대 그린이라는 말에는 한국 현대사의 자취가 남아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80년대이후 골프가 대중화된 이후에 포대 그린이라는 말은 태생적 유래와는 관계없이 골퍼들에게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 '솥뚜껑 그린'이라는 말도 쓰기는 하지만 대부분 포대 그린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김학수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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