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연습경기이지만 야구가 기지개를 껴고 본격적인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오는 5월5일 무관중경기로나마 시즌 개막에 들어가 스포츠팬들의 갈증을 풀어주려고 한다. 다른 구기 종목보다 가장 먼저 경기를 갖게 된 것은 야구가 국내 스포츠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이 크다는 것을 인식한 때문이었던 듯하다.
이 코너에서 스포츠 종목 용어에 대한 소개로 야구를 먼저 선택한 것도 스포츠팬들이 야구에 갖는 높은 관심을 고려했다. 오늘날 최고 인기스포츠로 자리잡은 야구 용어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모르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알고 궁금증이 생겼다. 야구 용어 탐색을 하면서 야구가 ‘가깝고도 먼 나라’인 한국과 일본의 근대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야구와 일본 야구는 모두 발상지 미국에서 들어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초창기의 모습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출발 당시의 모습을 살펴 보는 것은 한‧일 야구가 그동안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이해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야구는 고유한 문화적 전통이 붕괴하는 상황에서 근대화에 대한 욕구를 자극하며 주체의식을 주입시키는 상징적인 역할을 했다. 문명화와 민족의 자아를 일깨우는 역할을 한 야구의 모습은 한국과 일본 모두 영화, 책 등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2002년 제작한 스포츠영화 ‘YMCA 야구단’은 미국 선교사에 의해 도입됐던 1900년대 초반의 야구 초창기 상황을 잘 보여주었다. 신문물인 야구에 눈뜬 양반 자제 호창(송강호 분)과 신여성 정림(김혜수 분)의 사랑을 소재로 삼아 역사적인 사실과 가공의 인물을 잘 대비시켰다. 당시 과거제도가 폐지되면서 할 일이 없어진 선비들은 밀려드는 새로운 문물에 본격적으로 눈을 떴다. 쇄국정책으로 폐쇄됐던 문호가 열리면서 야구 등 각종 스포츠의 도입에 선도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영화 ‘YMCA 야구단’에서 정림(김혜수 분)이 “운동 좋아하십니까” 묻자, 호창(송강호 분)이 몸을 쓰는 활동은 낮은 신분의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듯 “나 선비 올시다”며 점잖함을 빼면서도 야구에 관심을 보이는 장면이 나온다. 양반의 ‘자아’가 흔들리면서 야구를 통해 보편적인 평등 의식이 싹트는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조선 시대 철저한 계급의식을 갖고 살았던 선비들은 야구 등 근대스포츠의 도입을 통해 근대화에 눈이 떴다. 야구는 주로 학교의 교외활동의 일환으로 보급되면서 일제시대에 점차 대중화되었다.
야구 용어 대중화에 앞장섰던 문학가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와 함께 일본 근대문학에 큰 영향을 준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는 1905년 발표한 그의 대표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고양이의 눈을 통해 야구를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일렬종대로 늘어선 전원이 함성을 질렀다. 일렬종대에서 오른쪽으로 약간 떨어진 운동장 쪽에는 포대가 요충지를 차지한 채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한 장군이 와륭굴을 향한 채 커다란 나무공이를 들고 대기하고 있었다. 이와 10미터 간격을 두고 또 한 사람이 서 있고, 나무공이 뒤에 또 한 사람이 서 있는데 이 사람은 와륭굴을 향하고 우뚝 서 있다. 이처럼 일직선으로 나란히 맞서고 있는 것이 포대다. 어떤 사람의 주장에 따르면, 이는 베이스볼 연습이지 결코 전투준비가 아니라고 한다. 나는 베이스볼이 뭔지 모르는 문외한이다. 그러나 듣자 하니 이는 미국에서 수입된 유희로, 오늘날 중학 이상의 학교에서 행해지는 운동 중에서 가장 유행하는 것이라 한다. 미국은 이상 야릇한 것만 생각해내는 나라라서 포대로 착각하는 것도 당연하고, 이웃에 폐를 끼치는 유희를 일본인에게 가르쳐줄 만큼 친절했는지도 모른다."
나쓰메가 소설적인 재미를 위해 야구를 군사적인 면으로 부각시키려 했을 수도 있다. 야구장 마운드를 ‘포대’로, 타자를 ‘장군’으로 각각 묘사함으로써 일본이 미국 페리 함대의 ‘흑선’에 의해 개항된 이후 만연화되는 서양문화 수입을 경계하려했다. 나쓰메는 점차 밀려드는 서구의 물결에 대비해 일본인의 주체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초창기 한국과 일본의 야구 역사에는 지식인들이 근대화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면서도 주체적인 민족의식을 결코 잃지 않겠다는 의지와 실천이 담겨있었다. 이제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 함께 ‘세계 베스트 빅3’에 드는 야구 강국이다. 한국과 일본야구는 과거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현재를 이해하고 앞으로 발전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김학수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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