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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4] 야구 ‘유격수’란 말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2020-04-19 10:57

영어 'Short Stop'을 '유격수'로 번역한 것은 내야수 가운데 가장 폭넓은 수비를 담당하는 포지션의 의미를 잘 부각시킨 것이었다. 이달 초 KIA 타이거즈 자체 홍백전에서 백팀 2루수 김선빈이 유격수 박찬호에 앞서 타구를 처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영어 'Short Stop'을 '유격수'로 번역한 것은 내야수 가운데 가장 폭넓은 수비를 담당하는 포지션의 의미를 잘 부각시킨 것이었다. 이달 초 KIA 타이거즈 자체 홍백전에서 백팀 2루수 김선빈이 유격수 박찬호에 앞서 타구를 처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게 유격훈련이다. ‘훈련은 무자비하게’라는 모 육군부대의 유격장 비석처럼 유격훈련은 부대의 상황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대개는 가장 힘들었던 추억으로 남아있다. ‘유격’에 ‘유’자만 들어도 몸서리가 처진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이다. 엄격한 규율 속에서 다양한 체력 단련코스와 힘든 행군을 강행해 몸과 마음이 고달프기 때문이다.

‘유격’이라는 말은 한자어이다. ‘놀 遊’에 ‘칠 擊’의 합성어이다. ‘遊’는 원래 논다는 의미이다. ‘유휴지(遊休地)’,‘유휴시설(遊休施設)’ 등에 ‘유’자를 쓰는 것은 놀고 있다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遊’는 논다는 의미 말고도 넓게 돌아다닌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유격’은 ‘유세(遊說)’에서 사용하는 ‘유’의 의미처럼 널리 돌아다니며 형편에 따라 공격한다는 말이다. 유격이 군사용어로 많이 쓰이는 이유이다.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해보면 유격이라는 단어가 총 853회 나오는데, 주로 군사, 전쟁과 관련한 대목에서 많이 등장한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는 ‘유격대’, ‘유격’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며 전쟁에서 승리할 것을 주문한다.

서강대 사학과 임지현 교수는 그의 저서 ‘세계사 편지’에서 “ 유격대, 러시아어 파르티잔, 스페인어 게릴라 등은 모두 같은 의미이다. 노동자나 농민들로 된 비정규군을 말한다”며 “김일성, 모택동, 티토 등이 레닌과 같이 도시에서 비밀조직을 움직인 음모적 혁명가 보다 80대까지 건강하게 오래 살았던 것은 특정 전선에 얽매이지 않고 폭넓게 전장터를 누비고 다녔던 유격대 활동을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일본 근대 문학에 큰 영향을 준 문학가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가 영어 ‘쇼스탑(Short Stop‧ SS)'을 ’유격수(遊擊手)‘로 번역한 것은 포지션의 임무를 말의 의미와 잘 조화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야구 영어 포지션은 ’pitcher' ,' catcher', 'fielder' 등 대부분 위치와 임무 등에 따라 표현했는데, 유격수만은 ‘SS'로 불렀다. 마사오카가 ’SS'를 ’유격수‘로 번역한 것은 그의 뛰어난 문학적인 착상에서 나왔다는 분석이다. 2루수와 3루수 사이를 지키며 수비 부담 정도가 다른 포지션에 비해 높은 자리의 의미를 잘 살린 것이다. 영어에서는 ’Short'를 써 작은 포지션으로 명칭을 정했는데, 마사오카는 전통적인 한자어인 ‘유격’이라는 말을 번역어로 사용, 포지션의 의미를 더 부각시켰다.

지정된 구역에서 모든 플레이를 시작해야 하는 투수, 포수와 달리 유격수와 다른 야수들은 예상한 내용에 따라 다양한 포지셔닝을 해야한다. 특히 유격수는 주로 팀에서 발이 빠르고, 송구 능력이 뛰어나고, 수비 범위가 넓고, 센스가 뛰어난 선수를 배치한다. 유격수는 보통 3루 쪽 근처에 위치한다. 우타자들이 3루 쪽으로 공을 더 많이 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유격수는 일반적으로 우타일 경우 3루 쪽으로, 좌타일 경우 2루 쪽으로 더 많이 이동하게 된다. 유격수와 2루수의 조합을 야구용어에서는 ‘키스톤 콤비네이션(Keystone Combination)이라고 한다. '키스톤 콤비'는 잘못된 용어인데 그만큼 내야수 중에서 유격수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 유격수는 공을 빨리 꺼내어 송구하기 위해 글러브의 크기가 다른 내야수에 비해 작다.

마사오카는 이런 포지션의 성격을 잘 파악해 두루 두루 공간 활용을 잘 하며 공격을 하는 ‘유격’이라는 단어를 착안, 붙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역대 유격수 출신으로 ‘공수주’ 3박자를 갖춘 뛰어난 능력을 보인 선수들이 많았다. 1970~80년대 최고의 유격수로 활약한 한국 야구의 김재박을 비롯 일본야구의 마쓰이 가즈오(松井稼頭央), 미 프로야구의 칼 립켄 주니어, 알렉스 로드리게스 등을 손꼽을 수 있다.

[김학수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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