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비는 주요 대회 우승을 차지할 때마다 남편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을 결코 잊지 않았다. 지난 2015년 브리티시 오픈 우승으로 아시아 선수로는 첫 그랜드 슬램을 차지할 때 “모두 남편 덕이에요”라고 말했다. 골프가 112년만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2016년 리우올림픽에선 첫 금메달을 따내면서 “남편과 우승의 기쁨을 함께 하고 싶다”며 애틋한 부부의 정을 과시했다.
이번 호주여자오픈에서 개인 통산 20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기까지 박인비는 지난 2년여간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리우올림픽이후 찾아온 특유의 장기였던 퍼팅이 난조를 보였고, 샷감각마저 흔들리면서 무관에 그쳤다. 준우승만 5번에 머물렀다. 주위에서는 깊은 슬럼프에 빠지며 은퇴까지 결심했다는 얘기까지 들렸다. 더 이상 선수생활을 하지 않고 시장을 보며, 가계를 꾸리는 평범한 가정주부로서의 삶을 살지않겠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퍼팅이 되살아나고 스윙 템포를 찾아 다시 일어나, 골프 여제의 저력을 입증해보였다. 그의 재기에는 남편의 보이지 않는 역할이 단연 큰 힘이 됐다는게 그를 잘 아는 주변 골퍼들의 공통적인 반응이다.
남편 남기협씨는 ‘그림자 외조’로 유명하다. 박인비가 대중에게 드러나는 순간 그를 좀처럼 보기 힘들다. 우승을 차지하는 시상식 때나 기자회견을 할 때는 얼굴을 보기가 어렵다. 그는 결코 그냥 노출되는 법이 없다. 자신보다 아내에게 좀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비쳐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박인비의 말을 통해 그의 역할을 알 수 있는게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둘은 박인비가 고교 3학년 때 골프아카데미에서 처음 만났다. 지난 2014년 결혼한 뒤 남기협씨는 프로골퍼였던 자신의 길을 포기하고 박인비를 위해 코치 겸 매니저 역할을 자청하고 나섰다. 남기협씨는 박인비와 함께 선수생활로 맞는 힘든 순간을 함께 하며 코치를 맡기도하고, 자상한 남편으로 토닥거려주기도 했다. 2008년 US여자오픈 우승 이후 약 4년동안의 긴 슬럼프와 리우올림픽을 앞두고 손목과 등부상에 시달리던 때 박인비의 마음을 붙잡아 주었다.
박인비는 앞으로 2020년 도쿄올림픽 2연패 대기록이라는 목표에 도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선 먼저 오는 6월말까지 세계랭킹 15위 이내에 든 한국 선수 4명 안에 포함되어야하는데 먼저다. 현재 세계랭킹이 17위인 박인비는 앞으로 상반기 중 한 번 정도 더 우승을 차지해야만한다. 오랜 전 연예인 최진실의 출세작이 됐던 모 광고 CF 카피, “남편 퇴근 시간,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는 말처럼 박인비의 올림픽 2연패는 남편 남기협씨가 ‘그림자 외조’를 어떻게 하는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부부가 빼어난 성적을 통해 이를 잘 보여주었기 때문이니까.
[김학수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장 kimbund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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