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여제’라는 명칭이 부여된 인물은 매우 드물다.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제는 당나라의 측천무후(則天武后)이다. 서양 역사에선 제정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 정도를 여제로 꼽는다.
우리나라에서 ‘여제’라는 말은 조선시대부터 썼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479년 성종실록 110권, 성종 10년 윤 10월22일 갑술 2번째 기사에 ‘성건 등이 폐비 윤씨 집에 담을 쌓도록정했으나 받아들이지 않고 이들을 책망하다’며 ‘측천 무후는 중국 역사상 단 한 사람의 여제(女帝)였으며, 후에 재상 장간지(張柬之) 등에 의해 폐위되었음’이라고 기록돼 있다.
스포츠에서 ‘여제’는 여성 군주를 의미하는 ‘여왕(女王)’, 동화에 나오는 불가사의한 매력을 지닌다는 뜻인 ‘요정(妖精)’과 함께 최고 정상을 차지한 여자 선수를 일컫는 의미로 쓴다. ‘여제’는 한 종목에서 명실상부한 최고 위치에 오른 팀이나 선수에게 붙이는게 일반적이다.
우리나라 언론은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여자 구기종목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여자 핸드볼에 ‘여제’라는 말을 붙여 최고의 의미를 부여했다. 여자 핸드볼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도 우승, 올림픽 2연패에 성공헀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우생순' 신화를 연출하며 은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여자 핸드볼 대표팀이나 대표팀에서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한 선수에게 이 말을 사용했다. (본 코너 1103회 '‘우생순’은 왜 여자핸드볼 대표팀 상징 은어가 됐나' 참조)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에 따르면 동아일보 1990년 11월23일자 ‘핸드볼女帝(여제) 가려보자’ 기사는 서울 잠실에서 서울올림픽 챔피언 한국을 비롯해 세계 강호 16팀이 참가하는 세계선수권대회 현황과 대회 전망을 전했다. 언론들은 이후 여자 핸드볼 대표팀에 올림픽이나 국제경기에 출전할 때면 '여제'라는 말을 자주 썼다.
핸드볼 이전 ‘여제’라는 말을 많이 등장한 종목은 여자 테니스였다. 1980년대 중반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 슈테피 그라프 등이 세계 여자 테니스를 석권하면서 둘은 한국 언론에 ‘여제’로 소개됐다. 핸드볼 이외에 서울올림픽 여자 양궁 개인과 단체전 등 2관왕의 위업을 달성한 김수녕이 ‘양궁 여제’라는 칭호로 불렸다.
오는 7월 2024 파리 올림픽에 한국 구기종목으로 유일하게 출전하는 여자 핸드볼이 좋은 성적을 거둬 '여제'라는 말로 다시 불려지기를 기대한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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