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식스는 미즈노와 함께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스포츠브랜드이다. 러닝화부터 배구화까지 다양한 제품을 출시해 전 세계인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국내서도 많은 이들이 아식스 제품을 사용하면서도 정작 아식스라는 브랜드 이름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본 코너 1071회 '배드민턴 브랜드 ‘미즈노’는 어떤 뜻을 갖고 있을까' 참조)
아식스란 영어 ‘ASICS’를 우리말로 표기한 것이다. ‘ASICS’는 라틴어 ‘Anima Sana In Corpore Sano(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말을 따왔다. 21세기 들어선 해당 문장을 영어로 번역한 'Sound Mind Sound Body'를 브랜드 슬로건으로 쓰고 있다. 여담으로 일본에서는 아식스 사명 변경 당시 3사 대표가 모여서 다리 여섯 개란 뜻으로 아식스라 했다는 말도 있다.
우리나라 스포츠 브랜드 ‘르까프(LECAF)’도 아식스와 같이 라틴어 머리글자를 빌어와 이름을 지었다. 르까프는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개최에 맞춰 나이키 신발을 OEM(주문자생산방식)으로 생산하던 화승에서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프랑스의 피에르 드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in)이 한 말인 ‘더 빨리, 더 높이, 더 강하게(Citius, Altius, Fortius)’의 머리글자에 프랑스어 정관사 ’LE’를 붙여 명명했다
아식스는 원래 창립할 때 회사 이름이 오니츠카 쇼카이(ONITSUKA Shokai)였다. 1949년 고베에서 오니츠카 키하치로(鬼塚喜八郎, Onitsuka Kihachiro)가 창립한 이 회사는 이후 회사명을 오니츠카 타이거로 변경했다.
첫 제품은 농구화 설립자 이름의 초성을 딴 ‘OK’ 였다. 그 당시 농구화는 운동화 중 가장 만들기 어려운 분야였다. 아식스의 설립자는 농구화에서 성공하면 다른 장애물도 넘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첫 제품은 1950년 발매됐다. 일본의 디자이너들은 문어 빨판을 보고 농구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빨판 같은(suction cup) 농구화의 밑창이 탄생했던 것이다. 1953년 첫 마라톤 운동화는 1953년 나왔다. ‘오니츠카 마라톤 TABI’ 였다. 이것은 일본의 전통적인 실내화 ‘타비(버선)’를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이 운동화는 고무 밑창과 내구력 있는 물질로 이루어졌다.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오니츠카 제품을 사용한 선수들이 메달을 휩쓸면서 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나이키 전신인 ‘BRS’에서 한때 오니츠카 타이거 제품을 수입하였으나 이후 나이키 독자 상표 발매 이후 경쟁자 관계로 바뀌었다. 1977년 다른 스포츠 용품 브랜드인 ‘GTO’, ‘제렝크’와 합병해 현재의 아식스가 됐다. 오니츠카 타이거는 아식스의 자회사로 아식스와는 다른 정체성의 운동화를 제조한다.
아식스가 국내 진출할 당시 상표권 분쟁이 있었다. 아식스가 자사 브랜드인 타이거(오니츠카 타이거)를 한국에서도 등록하려고 했으나 국내 신발제조업체인 삼화고무(범표)가 1966년에 이미 ‘타이거’라는 신발 상표를 선점하여 등록해놓은 상태였다. 한동안 아식스와 삼화고무가 타이거라는 상표를 놓고 다투기도 했다. 아식스는 삼화고무의 타이거와 구별하기위해 '아식스타이거'라는 상표로 등록을 신청하면서 삼화고무의 타이거와는 엄연히 다른 상표라고 주장했다. 삼화고무 측에서는 아식스타이거와 삼화고무 타이거는 서로 혼동될 수 있다고 반발했다. 이 분쟁은 1990년대까지 계속됐다. 하지만 1992년 삼화고무가 폐업하면서 삼화고무의 타이거 상표도 같이 사라졌으며, 아식스와 삼화고무의 타이거 상표 분쟁은 자연스럽게 종결됐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maniarepo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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