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언론에서 극일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이후였다. 조선일보 1981년 6월17일자 ‘"반일(反日)아닌 극일(克日)운동으로 풀어나가야"’ 기사는 국회 외무위에서 ‘대일(對日)문제에서 민정당(民正黨)의 이영일(李榮一)의원은『우리가 무역역조등을 거론하려하면 일본은반드시평양(平壤)에 무슨사절단을 보내는 식으로 우리의 분단상황을 악용하는등 패권주의를 노골화해왔다』고 주장,『정부가 이런일을 해결못하면 국민적 차원에서 반일(反日)이 아닌 극일(克日)운동으로 이문제를 풀어나가자』고 열변을 토했고’라고 전했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에서 극일이라는 말을 검색하면 가장 오래된 기사로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1984년 일본 교과서 왜곡 파동이 일어나면서 극일이라는 말은 더욱 많이 등장했다. 극일이라는 말 이전에는 일본에 반대한다는 ‘반일(反日)’, 공산당과 일본을 경계한다는 ‘반공방일(反共防日)’이라는 구호를 썼다.
스포츠경기에서 극일을 구호로 많이 내세웠다. 골프 박세리, 신지애, 최경주와 야구에서 일본 선수들을 눌렀으며,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가 일본 선수를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경향신문 1994년 10월17일자 ‘아시안게임 한국팀 이끈 박상하 단장 “극일 정신이 2위 고수 이룩”’ 기사는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이 종합 2위를 차지한 것은 ‘극일 정신’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1998년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발간한 이야기 한국체육사 시리즈에서 탁구에 관한 책 제목은 ‘극일에서 세계로’라고 지었다. 신아일보, 경향신문 체육기자 출신인 이방원씨는 한국탁구가 일본으로부터 탁구를 들여와 일본을 넘어서며 세계 강국으로 성장한 역사적 과정을 반영해 이 같은 제목을 정한 것이다. 책에서 ‘탁구는 일제시절에 찬란한 극일의 발자취를 쌓으며 나라 잃은 민족의 울분을 풀어 주었다‘고 밝혔다.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이다. 구매력 기준 1인당 GNP는 이미 일본을 넘어섰다. 반도체 등 IT산업이나 조선, 석유화학 등의 제조업 분야에서 일본을 압도하고 있다. 포항제철은 ‘신일본제철’을 넘어섰고, 삼성은 벤치마킹하던 ‘소니’를 눌렀다. 스포츠에서도 여러 종목에서 이미 일본에 앞섰다. 앞으로 과거 일본에 눌렸던 역사를 잊지 않으면서 극일의 길로 가야 할 것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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