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퐁 외교는 탁구를 의미하는 ‘핑퐁(ping pong)’과 다른 나라와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관계를 맺는 일을 의미하는 ‘외교(外交)’가 합성된 말이다. 영어로는 ‘pingpong diplomacy’라고 말한다.
‘ping pong’은 탁구가 발명된 영국에서 유래된 의성어이다. 1898년 영국의 크로스컨트리 주자였던 제임스 깁이 미국에 있을 때, 어린이 장난감을 보고 고안하여 그 공을 판자에 송아지 가죽을 펴서 붙인 라켓으로 칠 때 ‘핑동’이라는 소리가 나서 생긴 말이다. 지금도 국제적으로 탁구의 애칭으로 불려지고 있다. (본 코너 1001회 ‘왜 ‘탁구(卓球)’라고 말할까‘ 참조) 탁구는 1902년 영국에서 배운 대학생이 일본에 소개한 뒤 한국을 거쳐 중국으로 진출했다. 중국에서 일본식 한자어 ‘탁구(卓球)’ 대신 중국어로 ‘乒乓球(pīngpāngqiú)’라고 한 것은 영어 발음을 음차해서 만들었다. 코카콜라를 ‘可口可樂’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방법이다. 국제탁구연맹(ITF)가 1926년 출범한 뒤 게임회사가 미국에 상표권으로 등록한 ‘ping pong’ 대신 ‘table tennis’라는 말을 종목의 공용어로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국부 손문이 제창한 ‘민족주의, 민권주의, 민생주의’ 삼민주의(三民主義)를 따른 중국은 국내외에서 이 말을 계속 사용했다.
외교라는 말은 중국, 한국, 일본 등에서 오래전부터 사용해 온 한자어이다 .‘바깥 외(外)’와 ‘사귈 교(交)’가 합쳐진 이 말은 조선왕조실록에 202회나 검색된다. 중국과 일본과의 관계를 얘기하는 문서 등에서 이 말을 많이 사용했다. 통일 신라의 발판을 만든 김춘추의 외교, 청천강 이북과 압록강 남쪽 땅인 ‘강동 6주’를 확보한 고려 시대 서희의 외교 등이 역사적으로 성공 사례로 많이 거론된다.
‘핑퐁 외교’는 탁구를 정치화화려는 중국에서 만들어진 말인 것으로 추정된다. 1949년 공산당 정권을 수립한 마오쩌둥은 탁구를 중국을 대표하는 국가스포츠로 선언했다. 탁구를 통해 사람들은 하나로 모으고, 자신감을 형성하며 동시에 세계 다른 나라들과 연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며 중국민들에게 국가적으로 장려한 것이다. ‘핑퐁 외교’는 , 중국과 미국이 20여년 동안의 단절을 종식시키고, 양국 간의 화해를 추구하는 역사적인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4년 미국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는 중국 본토를 방문하는 미국 탁구 선수로 설정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언론에선 1971년부터 ‘핑퐁 외교’라는 말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 1971년 5월 12일 ‘미(美)—중공해빙조류(中共解氷潮流)의향방(向方)’ 기사는 ‘미(美)—중공간(中共間)의 이른바「핑퐁외교(外交)」를 계기로 미국(美国)의 중공(中共)에 대(対)한무역(貿易),여행통화(旅行通貨)의 제한(制限)이 대폭(大幅) 완화되고,양자간(両者間)의 해빙(解氷)무드가 세계(世界)에서 극적(劇的)으로 논의(論議)되고 있을때,닉슨대통령(大統領)은『우리가 한것은 얼음장을 깨뜨린일이다.이제 우리는 물이 얼마나 깊은가를 재야한다』고 중공(中共)의 진의(真意)를 타진(打診)할 필요성(必要性)을 말한 바 있다’고 전했다.
‘핑퐁 외교’는 남북한에서도 결실을 맺었다. 1991년 지바 세계선수권에서 남북한은 분단이후 처음으로 단일팀을 결성해 출전, 여자단체에서는 9연패를 노린 중국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또 2011년 11월 친선대회 '피스 앤 스포츠컵'에서도 남북한은 단일팀으로 출전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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