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조라는 말은 ‘몸 체(體)와 ’잡을 조(操)‘가 합성된 일본식 한자어이다. 신체 각 부분의 고른 발육, 건강 증진, 체력 단련을 목적으로 하는 운동이라는 뜻이다. 일본대백과전서에 따르면 메이지5년인 1872년 일본 청소년 교육을 위한 초등학교에 ’체술(體術)‘을 도입했으며, 이듬해인 1873년 ’체조(體操)‘라는 말을 일반적으로 사용했다.
영어용어사전 등에 의하면 체조는 영어 ‘Gymnastics’와 독일어 ‘Gymnastik’를 번역한 말이다. 모두 그리스어로 나체를 뜻하는 ‘Gymnos’가 어원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달리기, 뛰기, 던지기, 복싱, 레슬링 등 여러 경기가 나체로 진행한데서 유래된 말이다. 그리스어로 벌거숭이를 뜻하는'γυμνός(gymnós)'에서 유래했다. ‘γυμνάζω(gymnazo)’는 벌거벗고 운동하다는 의미가 됐으며 라틴어, 중세 그리스어를 거치면서 ‘Gymnasticos’나 ‘Gymnazein’으로 변형됐다. 'Gymnazein'은 체육관을 의미하는 ‘Gymnasium’으로 발전했다. 여러모로 체육과 관련이 깊은 단어다. (본 코너 2회 ‘'sport'는 왜 ‘체육’으로 번역되었을까?‘ 참조)
우리나라에서 체조라는 말을 처음 쓴 것은 조선말 고종 때였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1899년 대한 광무 3년 7월5일자에 ‘학부령(學部令) 제9호, 〈의학교 규칙(醫學校規則)〉을 시행하였다. 수업 연한은 속성과 3개년으로 정하고, 학과는 동물, 식물, 화학,물리,해부, 생리, 약물, 진단, 내과, 외과, 안과, 부영(婦嬰), 위생, 법의, 종두, 체조과를 둔다. 국내 의술이 발달하기를 기다려 다시 연한을 정하여 매우 절실한 의술을 교수한다’고 기술했다. 의학교 관제를 제정하면서 체조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이학래 전 한양대 명예교수가 저술한 ‘한국체육백년사’에는 ‘1906년 8월18일자 대한매일신보 기사에 보성중학교에서 체조를 외국의 운동기구로 매일 교련한다고 했다. 이는 점차 근대식 체조교육이 이루어져 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근대적 체조가 시작된 것은 배재학당에서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에 의해서였다. 헐버트는 1897년 배재학당에서 도수체조(徒手體操)를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철봉재를 세우고 체조시간이면 철봉을 하는 법을 지도했다. 이때 도수체조는 팔을 주로 하고 다리와 머리, 허리를 주로 하는 운동이었다.
조선일보 1921년 7월7일자 ‘안악영흥학교원족(安岳永興學校遠足)’ 기사는 ‘안악군평정리사립영흥학교(安岳郡坪井里私立永興學校)에서는 거오월삼십일신천군유천(去五月三十日信川郡柳川)으로 팔십여명학생중 삼십유여명(八十餘名學生中三十有餘名)만 직원인솔하(職員引率下)에 원족(遠足)을 행(行)케되엿는□적시(適時)에 신천군유천(信川郡柳川)셔 유지인사(有志人士)의발기(發起)로 각지방학교연합운동회(各地方學校聯合運動會)를 개최(開催)하엿다 영흥학교(永興學校)에셔 해운동회(該運動會)에 즉(即)□참가(參加)하야 각과목(各科目)의경기(競技)를 시(試)하야 양일간극구(兩日間極口)의 찬성(賛成)을 밧도록 열심(熱心)한결과 각잡과목운동(結果各雜科目運動)은 이등(二等)의 미명(美名)을 엇게되엿고 체조교사 오계(體操敎師吳啓)□씨 지휘하(氏指揮下)에 각학교(各學校)와 체조(體操)를 시전(試戰)하엿는때 오선생(吳先生)□벽□갓흔□영(令)에종(從)하야 각기생도(各其生徒)의 경쾌활민(輕快活敏)한 동작(動作)은수십명(數十名)□객(客)이 무불찬성(無不賛成)이엿다 맛츰내 체조일등(體操一等)의 우승기(優勝旗)를 차지하게되엿고 유월일일무사(六月一日無事)히 원착(遠着)하야 대환(大歡)□중(中)에셔 각산(各散)하얏다더라(사리원(沙里院))’라고 전했다.
체조는 올림픽에서 다른 주요 종목과 함께 최초로 시작된 오래된 종목이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전문화가 1970년대부터 시작됐다. 늦은 만큼 한국 체조는 큰 변화를 갖게됐다. 체조가 운동의 기본이라는 인식하에 대대적인 체조 바람이 일어나 새마을체조, 국민체조,국민건강체조 등이 만들어졌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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