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펜이라는 말은 소를 뜻하는 ‘불(Bull)’과 붓을 의미하는 ‘펜(Pen)’의 합성어이다. 소와 펜이 합성된 게 좀 의아할지 모른다 . 하지만 펜에는 붓 말고도 저장소와 함께 구치소라는 뜻도 있다. 불펜은 원래는 소의 우리를 뜻하는 용어였다. 투우, 로데오 경기에서 소들이 대기하는 장소였다. 사람을 소에 비유해 노동자들의 합숙소를 불펜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야구 용어로 구원 투수 연습장으로 쓰이는 것은 이런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일정한 공간에 갇혀 투구 연습을 하는 모양을 보고 파생된 것으로 보인다.
폴 딕슨의 야구용어 사전에 따르면 불펜의 어원을 크게 두 개로 정리했다. 투우장에서 투우가 드나드는 통로에서 비롯되었다는 설과 함께 미국담배회사 ‘불 더햄(Bull Durham)’ 광고판에서 유래됐다는 설이다. 1910년대 야구경기가 열린 미국 전역의 구장에 기업들의 펜스 광고가 많이 설치됐는데, 주로 큰 소가 그려진 불 더햄사의 광고판 근처에서 릴리프 투수들이 준비운동을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 용어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야구 용어로 쓰이기 전에 불펜은 교도소에서 죄수들이 운동하는 공간을 의미하는 은어로도 많이 쓰였다고 한다.
현재 미국에서 불펜은 야구 용어 이외에 다른 많은 용도로 쓰인다. 주로 제한된 공간이나 울타리 등을 의미하는 뜻으로 활용되고 있다. 병영 캠프, 중고차 주차장, 은행 출납창구, 법정에서 피고석, 열차 승무원 휴게실, 대기업 노동자 작업공간, 말 경매 알림벨, 정유회사 흡연실, 아이스하키 페널티박스, 재즈클럽에서 웨이터의 방해를 받지 않는 자유스러운 공간, 폭동 때 죄수들을 분리하는 공간, 매춘부들을 차단하는 울타리, 싸구려 여인숙 등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한다. 일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기 위해 돕는 ‘백업 지원’이라는 말로도 쓰인다.
수영 종목에서도 불펜이라는 용어가 있다. 선수들이 경기 출전을 위해 각 레인과 예선 조 편성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준비 구역을 의미한다. 수영장에서 불펜은 보통 경기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며 선수들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줄지어 있다.
국제수영연맹(FINA) 경영 규정에 따르면 소집원(Clerk of Course)은 불펜을 책임진다. 소집원은 각 종목 시작 전에 선수들을 소집하며, 광고와 관련된 위반사항이 있거나 호명 시 나타나지 않은 선수를 심판장에게 보고한다. 소집원의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여러 벌칙이 부과된다.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 등을 TV 중계로 보면 선수 소개를 할 때 선수들이 출발대에 서기 전에 걸어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경기 시작전 볼펜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정해진 순서대로 호명을 받고 소개되는 것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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