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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669] 왜 올림픽을 ‘오륜(五輪)’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2022-04-10 08:41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 모습. 일본 언론은 올림픽을 줄인'오륜'이라는 말을 1936년 베를린올림픽 직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 모습. 일본 언론은 올림픽을 줄인'오륜'이라는 말을 1936년 베를린올림픽 직전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국 최고의 지성인으로 불리다가 얼마전 타계한 이어령(1934-2022) 선생은 일본인의 성향을 분석한 자신의 대표적인 저서 ‘축소지향의 일본인’에서 일본의 언어생활에서 축소지향의 예로 일본어 ‘가라오케(Karaoke, カラオケ)’라는 말을 소개했다. 가라오케는 일본어인 ‘가라(空)’와 영어 ‘오케스트라’를 합쳐서 만든 말이다. 가라오케는 가짜 오케스트라라는 말을 축소한 것이다. 노래는 들어 있지 않고 반주만 들어 있는 음반이나 테이프. 또는 그것을 트는 장치라는 사전적 의미인 가라오케는 일본식 조어로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쓰는 말이 됐다. 지금은 ‘노래방’이라는 말로 대체되긴 했지만 한때 가라오케라는 말을 많이 썼다. 영어권에서 일본어에 기원을 둔 외래어인 가라오케를 공식 영어말로 사용하고 있다.

올림픽이라는 말을 일본식 한자어 ‘오륜(五輪)’이라고 줄여 부르는 것도 일본의 축소지향 문화에서 나왔다고 봐야할 것이다. 예전 1988년 서울올림픽 선수촌이 자리잡았던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 지역 동이름을 ‘오륜동’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올림픽 개폐회식 때 사용하는 올림픽기를 ‘오륜기’라고 줄여서 말하기도 한다. 올림픽을 오륜이라고 줄여서 말하는 것은 한국과 일본 뿐이다. 중국은 올림픽을 ‘아오린피커윈둥후이(奧林匹克運動會)’라고 말한다.

일본 위키피디아 등에 따르면 오륜이라는 말은 간결한 제목을 쓰는 일본 언론에서 탄생했다. 지면 절약에 고심하던 요미우리신문사의 가와모토 노부마사(川本信正) 기자는 올림픽 심벌인 다섯 개의 링에 착안하여 1936년 7월 25일 자 기사에 오륜이라는 단어를 최초로 사용했다.

도쿄 상과대학(현 이치바시 대)을 졸업한 가와모토 기자는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 육상 3단뛰기 금메달리스트 오다 미키오(織田 幹雄)의 권유로 요미우리에 입사한 뒤 스포츠를 담당하는 운동기자로 활동하다가 베를린올림픽 개막직전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에서 1940년 여름 올림픽 개최지가 일본 도쿄로 결정되었을 때 ‘오륜’이라는 약칭을 생각해냈던 것이다. ‘다섯 오(五)’와 ‘바퀴 륜(輪)’의 합성어인 오륜이라는 말은 당시 읽고 있던 소설가 기쿠치 히로시(菊池寛)의 수필에서 소개된 일본의 대표적인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蔵)의 병법서 ‘오륜서’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오륜서의 오륜은 불교에서 세상 만물을 구성하는 요소로 여겨지는 ‘땅·물·불·바람·하늘’을 의미하는데 그는 오륜을 청색, 황색, 흑색, 녹색, 적색의 5대륙을 상징하는 올림픽 마크를 연상해 올림픽을 대신하는 약자로 생각해냈던 것이다.

올림픽의 가타가나 표기인 ‘オリンピック’는 6문자나 되어 기사 제목으로 쓸 경우 지면을 많이 차지해 그가 오륜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 경쟁사인 아사히 신문 등 다른 언론사들이 이를 따라 함으로써 오륜이라는 단어가 일상어로 정착하게 되었다. 가와모토 기자는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스포츠 평론가, 일본 올림픽위원회 위원(JOC)과 1964년 도쿄올림픽 개회식에서 일본 TV 해설자를 맡기도 했다.
국내 언론에선 일본 언론에서 오륜이라는 말을 쓰기 이전 올림픽기를 '오륜기'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1932년 8월27일자 동아일보는 올림픽기에 대해 설명하는 ''오륜(
五輪) 이야기'라는 기사를 전하면서 올림픽기의 의미를 설명했다. 조선일보는 1936년 1월20일자 '오륜기(五輪旗)겨누는철권(鐵拳) 조선패권수결정(朝鮮覇權遂决定)'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도 오륜기라는 말을 사용했다. 하지만 일본 언론처럼 올림픽을 '오륜'이라는 명칭으로 쓰지는 않았다. 베를린 올림픽 이후 동아, 조선 등은 오륜이라는 말을 올림픽을 대신해 본격 사용하게 됐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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