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러거의 번역어는 ‘거포(巨砲)’라는 말을 주로 쓴다. ‘강타자(强打者)’, ‘주포(主砲)’라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거포를 더 많이 사용한다. 모두 일본식 한자어로 만들어진 말들이다. 거포는 말 그대로 매우 큰 대포를 뜻한다. 군함에서 발사하는 대포나 고전 영화 ‘나바론 요새(The Guns Of Navarone)의 엄청나게 큰 대포를 떠오르게 하는 단어이다. 거포라는 말은 대포처럼 강력하다는 의미이다.
야구에서 슬러거는 거대한 몸집에 호쾌한 스윙으로 홈런이나 장타를 치는 타자를 먼저 연상시킨다. 하지만 반드시 큰 체격를 갖고 있다고 슬러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거리를 내려면 방망이의 중심에 볼의 중심을 갖다 맞히는 기술적인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슬러거는 정확히 때리는 ‘미트(Meet) 기술’이 뛰어나야한다.
슬러거는 중심타선인 3,4,5번, 이른바 ‘클린업(Clean Up) 트리오’에 많이 기용한다. 하지만 현대 야구에서는 2번타자에 슬러거들이 많이 기용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타순이 많이 돌아오는 2번타자에 슬러거를 기용하면 득점 기회를 늘릴 수 있는 장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 2번타자는 번트 등 작은 기술로 클린업 트리오로 연결시키는 다리역할만을 했다.
그래도 슬러거의 꽃은 아무래도 4번타자를 꼽을 수 있다. 주자가 베이스에 꽉 찬 상황에서 큰 한 방을 터트리는 슬러거를 보면서 야구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다.
미국의 유력지 뉴욕 타임스는 지난 8일, 9일 2일간 인터넷판 스포츠 야구면 톱기사로 메이저리그(MLB) 최우수선수(MVP) 출신 딕 앨런의 부고기사와 명예의 전당에 오르지 못한 뒷얘기 등을 연속 보도했다. 향년 78세로 지난 7일 타계한 앨런은 흑인선수로 1960-70년대 인종차별을 극복하고 메이저리그를 빛냈던 슬러거였다.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시카고 컵스에서 활약했던 그는 흑인에 대한 차별과도 싸워야 했다.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당시 팬들이 그라운드에 물병 등을 던지며 모욕을 주기도 했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거침없이 장타를 날렸다. 1977년까지 통산 351 홈런, 1119타점, 타율 0.318을 기록했다. 올스타 7회, 1964년 신인왕, 1972년 아메리칸리그 MVP를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세상을 뜨기 전까지 야구선수로서 최고의 훈장인 명예의 전당에 오르지 못헀다. 올해 명예의 전당 심사위원회(골든데이스 위원회)가 그가 죽기 하루 전 열릴 예정이었으나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으로 인해 무산돼 끝내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앨런은 6년전 심사위원회서 1표 차이로 아깝게 탈락한 바 있었다. 그가 선수생활로는 가장 긴 7년간 몸담았던 필라델피아 필리스 구단주 존 미들턴은 심사위원회의 결정에 불만을 갖고 명예의 전당에 오른 선수만을 영구결번하는 구단 전통 룰을 변경, 그의 등번호 15번을 영구결번으로 기념하기도 했다.
슬러거의 능력을 평가하는 통계기록인 OPS(On base Plus Slugging, 출루율과 장타력의 합)에서 그는 출중한 성적을 남겼다. 특히 리그와 시대상황과 구장 차이등을 반영한 ‘조정 OPS(OPS+)’에서 역대 공동 14위에 이름을 올려 행크 앨런, 조 디마지오 등 전설적인 타자들보다 높다고 MLB닷컴은 전했다.
KBO리그에서 역대 슬러거로 백인천, 이만수, 이승엽을 꼽는다. 현역 선수로는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등이 슬러거로 불린다. 이대호의 경우 최근 프로야구선수협회 회장으로 ‘과다 판공비’ 사용으로 논란을 빚어 프로선수로서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었다. 흑백차별과 싸우며 슬러거로 고군분투한 딕 앨런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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