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01(화)

골프

‘미녀 골퍼’ 앨리슨 리의 ‘충격’ 고백 “골프에 대한 공포로 차로 고속도로 벽에 부딪혀 입원하고 싶었다”...“사람들은 (골퍼의) 불안과 정신적 고뇌 알지 못해”

2022-05-31 01:25

앨리슨 리
앨리슨 리

재미동포 ‘미녀 골퍼’ 앨리슨 리(27)가 충격적인 고백을 했다.

앨리슨 리는 최근 LPGA 홈페이지가 게재한 장문의 기고문을 통해 슬럼프에 빠져 있을 때 골프에 대한 공포 때문에 타라리 입원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운전하던 자동차를 고속도로 벽에 부딪힐 생각까지 했었다고 밝혔다.

앨리슨 리는 “사람들은 골퍼들의 불안과 정신적 고뇌를 알지 못한다”면서 “그러나 이 미친 골프 게임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는 매주 나타나서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 가장 어두운 순간에서 빛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그가 기고한 전문 내용이다.

“사람들은 좋은 면만 본다. 그들은 지도자, 승자, 그들이 알게 된 스타, 그리고 그들이 존경하는 게임을 본다. 그러나 (선수들이 겪는) 어려움과 마음의 고통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프로 골퍼의 삶이 얼마나 어둡고 외로운지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는 어린 나이에 골프가 내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다. 6살 때, 부모님은 나를 트레그넌 골프 아카데미라는 로스앤젤레스시 운영 골프 프로그램에 등록시켰다. 주간 골프 레슨 두 달에 25달러였다. 7살이 돼야 등록할 수 있었기 때문에 부모님은 내 나이를 속였다. 같은 반 남자와 여자아이들을 따라갈 수 있었기 때문에 (내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 아카데미에서 나는 새로운 가족(친구)을 얻었다. 우리는 토요일에 모여서 친선경기를 가졌다. 아카데미는 인근의 9홀 파3 코스에서 토너먼트를 주최했는데, 나는 일곱 살 때 처음으로 우승했다. 그때가 내가 골프와 사랑에 빠진 순간이었다. 나는 나보다 더 큰 아이들을 제치고 정상에 오르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더 많은 것을 원했고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1년 후, 8세 때 나는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주니어 세계 대회에 참가했다. 소녀들은 서로 경쟁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왔다. 그곳에서 렉시 톰슨과 주타누가른을 만났다. 그 이벤트에서 뛴 선수 중에는 지금도 투어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이 있다. 거기에서 내 나이 조에서 우승했다.

그때부터 내 인생이 완만한 (상승) 곡선을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12세 때 미국 주니어 골프 협회 대회에서 우승했다. 6년 연속 AJGA 퍼스트 팀 올아메리칸이 되었다. 14세 때 US여자오픈에 출전해 컷을 통과했다. 나는 우승을 목표로 모든 토너먼트에 참가했다. 나에게는 이기는 것이 버릇이 되었고, (우승하는 것이) 쉬웠다. 고등학교 중반에는 대학에 가지 않고 바로 프로로 전향할 생각을 했다. 내 평생의 목표는 프로 골퍼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다 15세 중반에 첫 슬럼프를 겪었다. 나는 성장통을 겪었다. 갑자기 내 골프 스윙이 낯설어졌다. 나는 페어웨이나 그린 근처에서 공을 칠 수 없다는 ‘경고음’을 듣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 자신감을 무너뜨리고 모든 것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항상 최고였다. 그러나 그 1년은 마치 내가 성공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을 준 기간이었다. 모든 세상이 끝나는 것 같았다. 내 정체성은 골프였기 때문이었다.

‘자기 회의’에 대한 첫 경험을 한 뒤 나는 대학에 가기로 결정했다. 나는 내가 내린 최고의 결정 중 하나인 UCLA에서 뛰기로 결심했다. 나 자신과 나의 가능성에 의문을 품은 순간이 분명히 있었다. 제시카 코다, 주타누가른, 톰슨과 나는 주니어 골프를 함께 했다. 그들이 바로 프로로 전향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그들과 함께 뛸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프로에 데뷔하지 않고) 대학에 가는 것은 나에게 옳은 선택이었다. UCLA에서의 첫해 나는 ‘팩12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고 대학 골프 최고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아니카상을 받았다. 나는 앨리 유잉, 에마 탤리, 애니 박, 마리아 스택하우스와 함께 US 커티스컵에서도 우승했다.

그렇게 나는 골프가 쉽다는 느낌에 다시 빠져들었다. 나는 세계 아마추어 랭킹 1위였고, LPGA 투어에서 내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는 것이 옳다고 느꼈다. UCLA에서 1년 반 만에 프로로 전향했지만, LPGA 투어에 참가하면서 학위를 따기 위해 학업을 계속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스폰서는 없었지만, 투어 첫해를 보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돈은 모았다. 그런 압박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상상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 좋은 루키 1년을 보냈다. 내 게임은 나를 경쟁하게 만들었고, 롤렉스 세계 랭킹 25위까지 올랐다. 2009년 주니어 솔하임컵 미국 대표로 참가했을 때부터 나의 꿈이었던 솔하임컵에도 2015년 미국 대표로 참가했다.

하지만 투어에서 몇 년 후, 내가 두고 온 것 같았던 어둠의 물결이 다시 밀려오기 시작했다. 부상과 씨름하고 프로로서의 첫 토너먼트 우승을 위한 여러 시도에 실패하면서 ‘자기 회의’와 좌절을 겪었다. (과거에는) 모든 단계에서 마음먹은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이제는 매주 컷을 통과할 자신이 없는 것으로 바뀌었다.

솔하임컵 팀에 합류한 지 3년 만에 나는 Q스쿨로 돌아갔다. 나는 (이것이)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 자신에게 계속 물어보았다.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나는 왜 계속 이런 일을 겪고 있는 걸까? 나는 대학을 졸업한 후 (거취에 대해) 많은 고심을 했다. 나는 라스베가스에서 혼자 살고 있었고, 그 생활은 비참했다. 내 대학 친구들은 직장을 구하고 세상으로 진출하고 있었다. 투어에 참가한 친구들은 모두 나보다 더 나은 성과를 내고 있었다. 모두들 잘하고 있어서 기뻤지만, 내가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린 나이에 나는 이 삶이 나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삶은 내 품에서 멀어져 가고 있었다. 토너먼트를 위한 티업은 더 이상 흥미롭지 않았다. 한때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작고 하얀 골프공이 나의 가장 큰 두려움이 되었다. 나는 골프장에 발을 디딜 생각을 하면 두렵고 불안하고 속이 메스꺼워졌다.

내 미래가 걱정돼 나는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엄마에게 LPGA 출전 자격을 되찾지 못하면 끝이라고 말했다. 너무 형편없는 플레이를 해서 Q스쿨 시리즈 진출하기 위한 Q 스쿨 2단계로 돌아가야 했다. 다행히도 통과했다. 그 다음 시즌은 약간 나아졌지만 여전히 LPGA 자격을 유지하는 데 실패했다.

2019년 말은 정말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던 때였는데, 부모님이 1년만 더 하고 난 뒤 어떻게 되는지 보자고 격려해주셨다. 2020년의 첫 번째 토너먼트는 (나를) 골프라는 게임에 다시 푹 빠지게 했다. 조건부 신분으로 (예선)을 통과했다. 그러나 개막 라운드를 위해 골프장으로 운전하는 동안 흥분은 두려움으로 바뀌었고 나는 공황 상태에 빠졌다. 골프장에 더 가까워졌을 때 더 많은 불안이 내 몸을 덮쳤다. 나는 숨을 쉴 수 없었고 내 얼굴에 흐르는 눈물 때문에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감정이 너무 압도적이어서 나는 티업과 경쟁하는 것보다 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 고속도로 벽에 차를 부딪힐 생각도 했다. 그 순간, 골프장 외의 장소가 안전할 것 같다고 느꼈다. 그게 내 밑바닥이었다.

사람들은 골퍼들의 그런 면을 보지 않는다. 그들은 (골퍼들의) 불안과 정신적 고뇌를 보지 못한다. 자신과 사회가 가하는 압박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 매일 잠에서 깨어나지만, 실패를 겪는다. 어떤 날은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떤 날은 모든 것이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느껴진다.

15세 때, 누군가가 나에게 결코 잊지 못할 말을 했다. 나는 토너먼트에서 끔찍한 1라운드를 겪었다. 나는 퍼팅 그린에 앉아 기권할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것에서도 물러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다음 날 (골프장에) 나타나서 라운딩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고통스러웠다. 친구와 친구의 아버지는 내가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와서 함께 앉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전장에서 적이 너를 향해 달려오는 것을 볼 때, 너는 너의 입장을 지켜야 한다. 아무리 겁이 많아도 신념을 위해 싸워야 한다. 도망칠 수는 없다. 그는 옳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골퍼가 되고 싶다면 내 입장을 견지해야 했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가 언급하지 않은 것과 지금 내가 깨달은 것은, 그 전쟁터에는 나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함께 싸우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우리는) 같은 감정, 같은 생각, 같은 의심을 갖는다. 우리는 단결하여 싸우는 인민의 군대를 가지고 있다. 다른 방향으로 돌리는 것이 부끄러운 게 아니다. 우리는 이 일에 함께한다는 것을 알아아 한다.

난 아직 여기에 있다. 나는 강해져야 하기 때문에 매일 투쟁하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모든 것을 제공하고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춘 이 미친 골프 게임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결코 쉬운 길은 없고, 똑같은 길도 없다. 매주 나타나서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 가장 어두운 순간에 빛을 찾아야 한다. 나는 거기에 가고 있다. 한 번에 한 걸음, 한 스윙, 한 라운드, 하루에 한 번씩."

[장성훈 선임기자/seanmania2020@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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